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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가 이대호의 홈런 부담을 줄여준 까닭은 무엇일까.
이대호는 전형적인 장거리 타자다. 오릭스가 그를 영입한 건 순전히 홈런을 펑펑 때려줄 수 있는 타자라는 평가 덕분이었다. 가뜩이나 일본프로야구는 올해 반발력이 떨어지는 공인구로 교체한 뒤 엄청난 투고타저 현상을 겪고 있다. 한방을 갖춘 이대호를 영입해 홈런 가뭄을 해결하겠다는 게 오릭스의 근본적인 목표다. 하지만 오릭스는 이대호의 홈런 옵션을 되도록 낮게 잡았다. 구단이 홈런에 대한 기대감을 낮춘 것일까. 과연 어떤 의미일까.
류중일 감독의 지론
류중일 감독은 "라이언 가코와는 100타점과 관련해 내기를 걸었다. 100타점을 달성하면 내가 가코의 와이프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만약 100타점을 못하고 퇴출되면 세계 어느 곳에 가있든 가코가 나에게 선물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왜 타점일까. 류 감독은 "용병 타자에게 홈런을 옵션으로 거는 건 절대 금물이다. 홈런 많이 치면 돈 더 주겠다고 하는 건 너무 부담되는 조건이다. 타자에게 홈런 옵션은 걸면 안 된다"고 말했다. 처음엔 개인적인 내기와 선물에 대한 농담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삼성은 가코에게 홈런 옵션은 거의 할당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 발언이었다.
가코는 타점에 대한 기대마저 저버린 채 결국 퇴출됐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가코는 어떻게든 맞히는 타격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다가 퇴출된 케이스였다. 마냥 붕붕 휘두르는 용병은 아니었다.
용병, 왜 용병인가
용병은 용병이다. 다니엘 리오스가 두산에 대해 온갖 립서비스를 했었지만, 결국엔 돈을 많이 주겠다는 일본프로야구의 야쿠르트로 떠난 게 2008년이다. 인간적인 관계가 쌓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용병은 더 많은 몸값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대호 역시 일본프로야구에선 용병이다. 용병은,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이 본인을 위해 뛰어야 한다.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팀원'이 되기 위해 숱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엔 용병은 용병 대접을 받을 뿐이라는 게 나중에 드러났다. 이건 한국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용병들은 99% 자신의 이익을 위해 플레이한다.
홈런 옵션이 걸리면 시도때도 없이 홈런을 노릴 수밖에 없다. 2점차로 뒤진 8회에 이대호가 선두타자로 타석에 섰다. 무작정 홈런을 노리다 삼진을 당하는 것과, 어떻게든 출루에 성공해 대주자로 교체되는 것 가운데 어느쪽이 팀에 도움이 될 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오카다 감독과 오릭스 구단은 류중일 감독과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이대호가 홈런 옵션이 높다고 해서 무작정 홈런만 노릴 타자는 아니다. 그 보다는 구단 차원에서 이대호에게 부담감을 줄여주겠다는 차원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호가 홈런을 못 쳐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일단 배려는 배려다
류중일 감독은 최근 일본에서 복귀한 이승엽에게 "내년 시즌에 30홈런과 100타점을 기대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타자에게 홈런 옵션을 걸면 안 되다고 하면서도 이승엽에 대해선 유독 목표지점을 명확히 할당했다.
이승엽은 한국에선 더이상 용병이 아니다. 8년만에 일본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30홈런을 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이승엽은 본인이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줘야할 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류중일 감독은 이승엽을 믿고 그렇게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한 것이다.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팀내 위치를 일깨워주는 것이며, 이승엽 역시 어떤 의도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승엽이 크게 부담을 느낄 일도 없다.
이대호가 굳이 홈런을 노릴 필요는 없다. 본래의 자기 스윙을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하는 것. 오카다 감독이 이대호에게 바라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홈런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홈런에 대한 기대감을 접은 게 아니라 이대호를 배려하려는 게 목적인 셈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