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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스타일, '미국+일본' 둘다 버릴 수 없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2-02 11:50


'거친 원시성'의 유지. 한국프로야구에 앞으로도 필요한 부분이다. 롱볼 스타일을 추구하는 건 한국프로야구의 미래와도 연관된다. 삼성 최형우가 지난달 27일 대만과의 아시아시리즈 예선전에서 8회에 결승 2점홈런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 타오위앤(대만)=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한국프로야구가 국제무대 강자와 흥행 성공 모델이란 자격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최근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시리즈는 삼성이 한국 구단 가운데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막을 내렸다. 일종의 국가대항전 성격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가 대표팀 차원이든, 개별 팀 차원이든, 서로 단기전에서 본격적으로 맞붙는 건 늘 흥미롭다.

작년까지 2년 동안은 아시아시리즈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한일 우승팀이 일본에서 한차례씩 이벤트성 경기를 가졌을 뿐이다. 이번 아시아시리즈에선 2009년 3월의 2회 WBC 이후 2년8개월만에 본격적인 단기전 형식의 한일 대결이 펼쳐졌다.

일본 야구, 배울 것만 배우자

이번 아시아시리즈에서도, 소프트뱅크를 통해 일본프로야구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났다. 일본 야구는 강점을 극대화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단점이 없도록 꼭꼭 숨기면서 상대편의 실수와 틈새를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10여년전 일본프로야구 특파원을 지낸 선배 기자가 "야구 좋아해서 야구기자가 됐지만, 일본에서 야구를 1년간 봤더니 야구가 조금 싫어졌다. 늘 같은 패턴에 지루하리만치 1점을 쥐어짜는 야구는 확실히 재미없다"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일본프로야구는 점수가 많이 나도 뭔가 흥미가 떨어진다. 이른바 '공장식 득점'이 너무 많다. 호쾌한 타격 보다는 진루타에 의한 득점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 일본프로야구는 반발력이 떨어지는 공인구를 도입하면서 전체 12개팀 가운데 팀방어율 2점대 케이스가 무려 6팀이나 나왔다. 이걸 경이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야구는 근본적으로 점수가 나야 이기는 스포츠다. 팬들은 타이트한 투수전 보다는 호쾌한 타격전을 선호한다.

하지만 한국 야구가 일본프로야구의 강점 일부분을 계속 수용해나갈 필요는 있다. 투수, 야수의 기본기와 세밀함, 그리고 베이스 점령 능력을 높이는 빠른 플레이는 분명 한국프로야구에도 계속 필요한 부분이다. 일본프로야구가 WBC에서 두차례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도 이같은 강점 덕분이었다. WBC가 열리는 2,3월에 미국 선수들이 부상 위험을 무릎쓰고 전력을 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도 한 이유겠지만, 일본 야구는 분명 동양인의 체력과 체형에 맞도록 정밀한 야구를 발전시켜온 저력을 발휘했다.


한국프로야구가 최근 몇년간 인기를 되살릴 수 있었던 주요 배경중 하나가 바로 국제대회 성적이다. 2006년 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등을 통해 '한국 야구가 국제무대에서 통한다'는 자부심을 얻게 됐고 이것이 국내 리그 인기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이 일부분 필요하다. 이런 면에선 일본프로야구가 강점이 있다. 한국프로야구도 이 부분을 놓쳐선 안 된다.

궁극적으론 미국 스타일이 답이다

메이저리그는, 최근엔 스몰볼을 차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근본적으로 힘대 힘으로 싸우는 롱볼을 추구한다. 희생번트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작전도 잘 걸지 않는다. 도루는, 확실한 능력을 갖춘 몇몇 선수만 해당되는 얘기다.

한국보다 프로야구 역사가 100년이 긴 미국이다. 프로야구의 생명력은 결국 흥행 여부에서 갈린다. 한국보다 100년이나 프로야구를 더 해온 미국이 그간 이것저것 수많은 시도를 해봤을 게 당연하다. 그런 메이저리그가 결국 선택한 답은 롱볼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롱볼이 관중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현실에서 체험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프로야구의 상위팀들간 경기에선 6,7회에 2,3점차가 나면 뒤집기가 정말 어렵다. 상위팀들은 한경기를 책임질만한 좋은 투수들을 세트로 구비해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타선의 파워가 약하기 때문이다. 야금야금 따라붙는 건 있어도 큰것 몇방으로 펑펑 쳐서 갑자기 승부가 혼란스러워지는, 팬들이 즐거워하는 상황은 발생하기 어렵다. 자꾸 스몰볼만 추구하다보면 결국 선수들도 거기에 적응하게 된다. 리그 전체가 적응이 끝나는 순간, 흔히 말하는 강타자들이 희귀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현재 한국프로야구는 되살아난 인기와 조금 더 강조되기 시작한 지역주의 덕분에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10년 후에도 이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을 보장할 수 없다. 이미 프로야구는 90년대 초중반까지의 불같은 인기가 2000년대 중반까지 급격하게 시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쉽지 않은 문제다. 한국프로야구는 성적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롱볼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단기간의 결과를 내기 위해 집착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위팀 팬들 입장에선 "펑펑 쳐봐야 뭐가 좋은가. 이기는 야구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

일본프로야구 스타일을 차용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왜 미국이 150년간 밀어붙이는 야구를 해왔는지를 잊을 필요도 없다.

지난 2004년 클리블랜드 주요 신문인 '플레인딜러'가 미국에서 프로 테니스 인기가 급락하는 이유에 대해 장문의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테니스가 스포츠 특유의 '원시성'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한국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원시성의 유지 혹은 회복'은 향후 수십년을 결정지을 중요한 문제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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