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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시리즈는 양팀 마운드의 '힘'과 '기술'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힘이 기술을 이겼다.
"그렇다면 삼성 투수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강점, 눈여겨봐야할 부분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허 과장은 "우리 투수들은 힘이 좋다"고 했다. 제구력은 약간 떨어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파워 넘치는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많다는 얘기였다.
147㎞가 흔하다
삼성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뒤로 갈수록 힘이 넘치는 방법을 택했다. 1차전 매티스, 2차전 장원삼, 3차전 저마노, 4차전 윤성환 등 선발투수들은 모두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45㎞를 넘지 못한다. 이들 뒤에 차우찬과 정인욱 등 빠른 직구를 갖춘 또다른 선발투수들을 대기시켰다. 1차전과 4차전에서 큰 효과를 봤다.
두번째 투수가 막아내면, 그후엔 역대 최강이라 평가받는 불펜투수들이 줄줄이 등판했다. 정현욱 안지만 오승환 등은 모두 145㎞를 훌쩍 넘는 공을 던진다. 뒤로 갈수록 빠른 공이 등장하는 건 상대로선 엄청난 부담이다. 초반에 앞서지 못하면 뒤집기 어렵다는 부담을 안기 때문이다.
올초부터 삼성 불펜은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효과를 누렸다. 불펜투수들은 일종의 '방패'에 해당하지만, 방패가 강하니 공격무기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계속됐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파워의 상징은 오승환
SK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꽤 많은 찬스를 얻었지만 5게임을 치르는 동안 그 흔한 희생플라이 하나를 치지 못했다. 31일 5차전에서도 SK는 0-0인 2회 1사 만루에서 희생플라이를 얻지 못했다. 시리즈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등장했던 장면이다. SK 타자 가운데 홈런이 아닌 적시타를 친 사례는 2차전의 박정권이 유일했다.
SK 타자들이 전반적으로 타격감이 떨어져있기 때문이었지만, 삼성 투수들이 희생플라이를 내주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힘으로 내리누른 측면도 있다. 몸쪽으로 꽉 박히게 빠른 공을 던져대면 희생플라이도 치기 어렵다.
이처럼 삼성 마운드가 힘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승환이 있다.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최고의 악력을 지닌 손으로 찍어 던지는 오승환이 있기에 가능했다. 오승환은 한국시리즈 4경기에 등판, 5⅔이닝 2안타 무실점으로 3세이브를 기록했다. 경기당 1이닝 넘게 등판했는데, 이 역시 삼성 류중일 감독의 애초 구상이었다. 힘으로 누르기엔 오승환만한 카드가 없다. 정규시즌을 마친 뒤 보름 넘게 쉬었으니 오승환이 이번 시리즈에선 조금 무리해도 관계없다는 입장이었다. 실제 오승환은 이기는 모든 경기에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펑, 펑' 하며 미트에 꽂아대는 오승환의 직구 효과음은 그 자체로 삼성 마운드의 힘을 상징했다.
SK 투수들도 잘 던졌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부터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제구력이 무뎌졌다는 게 드러났다. '기술자'였던 SK 투수들의 핀포인트 컨트롤이 조금씩 빗나가면서 삼성 타자들에게 결정적인 안타와 홈런을 맞은 것이다. SK 투수들이 약했다기 보다는, 삼성 투수들이 너무 강했던 한국시리즈였다.
잠실=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