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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마무리투수 오승환은 '지키는 야구'의 궁극을 보여주고 있는 투수다. 25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승리를 지켜냈다. 오승환의 등판 자체가 이미 경기 종료를 연상시킬 만큼 위엄있는 등장이었다.
마무리투수로서의 특징은 야구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었다. 최근 우연찮게도 오승환이 동료 투수 권오준과 오목을 두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홈게임때 경기전 훈련을 마치고 휴식시간을 갖는다. 이때 오목이나 장기를 두면서 쉬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들이 오목을 둘 때면 일단 한 차례라도 공세를 잡으면 계속해서 공격에 치중한다. 일단 석줄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연결해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가 승리하거나 혹은 공격만 하다가 밑천이 바닥나고 역습을 허용하면 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오승환과 권오준의 오목을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엄청난 방어전이 계속됐다. 오승환은 일단 무조건 막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공격은 안중에도 없다. 일단 상대가 두점만 연결하면 무조건 그 한쪽 머리를 막고 본다. 혼잣말로 "일단 막는 게 중요해"라고 되뇌이며 오승환은 계속해서 두점 머리를 차단하는 수비만 했다.
흑돌을 쥔 권오준은 "야, 이거 대체 둘 곳이 없네"라고 중얼거렸다. 이후 곧바로 오승환과 똑같이 수비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숨막힐 정도로 어려운 전개가 이어졌다. 언제쯤 한 쪽이 파상공세를 펼칠 수 있을 지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한판이 됐다. 바둑판을 다 써도 승부가 결정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앞선 판은 오승환이 승리했고, 이 판은 미팅 때문에 중단됐다.
불펜투수는 언제 어떤 상황에 등판하더라도 일단 위기를 막고 보는 게 임무다. 누가 마무리투수 아니랄까봐 오승환은 철저하게 '지키는 오목'을 두고 있었다.
이 가을, 오승환의 등판을 지켜보는 상대 선수들은 마치 꽉 막힌 이 바둑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오승환의 '지키는 심리'는 일상에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대구=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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