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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송승준은 이날 경기 후 아내 김수희씨와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에서 많은 팬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먹자 소화도 잘됐다고. 그는 "가을에 아내와 이렇게 즐거운 외식자리를 갖는 것은 처음"이라며 밝게 웃었다. 그럴만도 했다. 지난 3년간 이맘때만 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피해서 편의점에도 못갔다"며 힘들었던 시간을 돌이켰다.
프로선수라면 할 수 없이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송승준은 "나는 괜찮았다. 하지만 아내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왔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그는 "야구선수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부진하면 그 비난이 아내에게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처음으로 정성에 보답, 기쁘다"
김씨는 이날 경기를 처음부터 지켜보지 못했다. '혹시 남편이 부진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에 TV 리모컨을 누르지 못했던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TV를 켠 순간 '4회 0-0'이라는 스코어를 확인하고 '우리 남편이 잘하고 있구나'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기 위해 1년 내내 피땀 흘리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 하지만 야구선수 아내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대단하다. 송승준은 "몸에 좋다는 음식과 보약을 매일 준비해준다. 최근에는 매일같이 절에 나가 108배를 올렸다고 하더라"라며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내가 야구를 하며 처음으로 아내의 정성에 보답을 한 것 같다. 장인어른께서도 나 때문에 기분이 너무 좋으셔서 약주까지 하셨다고 하더라. 너무 기뻤다"고 했다.
송승준은 "물론 팀이 12년 만에 포스트시즌 홈경기에서 승리한 것,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도 매우 기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승리를 아내에게 바치고 싶다"며 "지금까지 남편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너무 많은 도움을 줬다. 내가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남은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도 멋진 투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을 힘을 다해 던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