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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황재균이 혼자서 승리를 지켜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였다. 한마디로 '원맨쇼'였다.
황재균의 환상적인 수비는 2회부터 시작됐다. 2사 이후 SK 김강민이 친 타구가 빗맞아 3루수 쪽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천연잔디가 깔려 있는 사직구장은 빗맞은 타구의 경우 잔디의 저항으로 인해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2사 이후라 뒷쪽에서 수비를 하던 황재균이 급히 뛰어들었고, 맨손으로 공을 잡아 러닝스로로 1루에 정확히 송구해 타자주자를 아웃시켰다.
이 보다 더 빛나는 수비는 7회에 나왔다. 롯데가 3-1로 앞선 7회초 SK의 공격. 2사 2,3루의 절대위기가 왔다. 안타 하나면 동점이 되는 상황. 타석엔 전날 연장 10회 결승홈런을 때린 정상호였다. 이번에도 빗맞아 숨이 죽은 채 데굴데굴 3루수 앞으로 타구. 역시 황재균은 베이스 뒷쪽에서 수비 위치를 잡고 있었지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돌진해 들어오더니 맨손으로 공을 잡아 또다시 러닝스로로 1루에 정확하게 송구했다.
3루수의 러닝스로는 성공하면 멋진 플레이가 되지만 실패할 경우엔 엄청난 재앙이 따른다. 스핀이 걸려 통통 튀는 공을 맨손으로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공을 놓치면 타자와 주자는 모두 세이프 된다. 공을 잘 잡았다고 해도 달려오는 스피드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할 경우엔 악송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송구가 뒤로 빠지기라도 한다면 타자와 주자를 모두 살려주는데다 한 베이스씩 더 허용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러닝스로는 평소 많은 훈련 뿐만 아니라 타고난 감각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날 황재균은 두차례 메이저리그급 러닝스로를 멋지게 성공시키며 명품 수비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수비에서 '필(Feel)'을 받은 황재균은 8회부터는 팬서비스 차원의 서커스 수비를 계속 이어갔다. 1사 이후 정근우의 강습 타구는 가슴으로 막아 땅에 떨어뜨린 뒤 침착하게 1루에 뿌렸다. 9회 1사 이후 대타 최동수가 친 선상으로 빠져나가는 총알같은 2루타성 직선 타구는 땅을 스치기 직전 다이빙캐치로 잡아냈다.
이날 황재균은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그의 타격 성적을 거론한다면 그건 경기를 안 보고 기록지만 본 사람이다.
부산=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