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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불운했던 정상호, 설움의 홈런을 치다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1-10-16 19:25


롯데와 SK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SK 정상호가 연장 10회초 롯데 부첵의 투구를 받아쳐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솔로홈런을 치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SK 정상호(29)는 너무 착하다. 팀 최고참 최동수는 "우리 팀 선수들 중 정상호와 박희수가 가장 순한 것 같다"고 했다.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다.

2001년 SK 1차로 지명된 정상호는 대형 포수감이었다. 동산고 2학년 때 봉황대기에서 6할1푼9리라는 엄청난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1m86, 96kg의 건장한 체격에 파워는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시즌 전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재활하던 정상호가 프리배팅을 하자 SK 이광길 전 주루코치는 "니네 별로 돌아가"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괴력이 실린 타구의 비거리와 타구에 맞는 소리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 불운했다. 프로에 적응해가던 2003년 당대 최고의 포수 박경완이 현대에서 SK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프로에 차츰 적응하던 정상호는 박경완에 가려 만년 백업포수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많은 야구 전문가들은 "정상호가 다른 팀에 갔으면 너끈히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2009년 박경완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정상호는 팀의 주전 포수로 나섰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아팠던 고관절이 더욱 악화됐다. 결국 지난해 정상호는 재활을 반복하며 팀의 우승을 벤치에서 바라봐야만 했다.

올 시즌, 그에게는 기회였다. 박경완이 부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 페넌트레이스 첫 경기 인천 넥센전에서 결승타점을 올린 정상호에겐 여전히 박경완의 짙은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박경완이 복귀해 백업으로 밀려나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한순간 어두워진 그는 "휴~ 어쩔 수 없죠.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죠"라고 했다.

SK 김성근 전 감독에게 많은 질책을 받기도 했다. 팀이 어려웠던 7월 부상으로 경기출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SK 김성근 전 감독은 "부상을 이겨내야 한다. 정상호는 나약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사실 원색적인 비난이라기 보다 부상을 이겨내고 그라운드에 진가를 보여달라는 애정어린 질책이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정상호는 "주위에서 (비판에 관련된) 기사를 보지 말라고 해서 보지 않았다. 감독님이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겠나. 중요한 건 내가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올 시즌 부상 후유증 속에서도 112경기에 출전, 2할6푼, 11홈런, 50타점을 기록했다. 평범한 성적이었지만, 부상투혼 속에서 얻어낸 값진 결과. 마스크를 쓰고 올린 기록이라 더욱 값졌다.


그는 KIA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다. 16타수 1안타. 그러나 정상호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포수로서 리드가 먼저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엄청난 파워는 항상 상대팀의 경계가 됐다. 결국 그가 끝냈다.

16일 부산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 연장 10회초, 승부를 가르는 역전 결승 솔로홈런을 날렸다. 롯데 부첵의 142㎞ 실투성 가운데 직구를 그대로 통타, 105m 좌월 솔로포를 터뜨렸다. 정상호의 파워를 그대로 보여준 타구. 좌측 펜스에 꽂히는 순간에도 라인 드라이브성으로 날아갔다. 그는 "펜스맞고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고 웃었다. 그동안의 설움을 날리는 한 방이었다.

너무나 착한 그는 비운의 선수였다. 비운의 꼬리표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산=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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