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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체격의 '빅초이' 최희섭을 '멋진 꼬마'라고 불렀던 감독이 있습니다. 오래전 사연입니다.
한편으론 다소 마음 약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최희섭은 "1차전때 컨디션은 좋았지만 7번 타순에서 치게 되니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욕심을 부려서 부진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허리 부상 때문에 시즌때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최희섭입니다. 모두가 우려하는 가운데 1차전에서 타순이 7번까지 내려가자 그게 속상했었나 봅니다.
평소 최희섭은 다소 '순둥이'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에도 거만함 같은 걸 찾아볼 수 없는 선수였습니다. 특파원들이 경기후 클럽하우스로 내려가면 늘 웃는 얼굴로 맞곤 했습니다. 자, 이제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최희섭은 그저 '순둥이'일까요.
상당히 거친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최희섭은 덕아웃에 들어가자마자 벽쪽에 배트를 휘둘러 두동강을 냈습니다. 이어 벤치에 앉더니 왼쪽 주먹으로 의자를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러다 손 다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분노는 홈런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날 최희섭은 3-3 동점인 8회 2사 1,2루에서 131m짜리 우월 결승 3점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최희섭은 관중으로부터 커튼콜을 받기도 했습니다. 팀동료 조시 베켓이 최희섭의 얼굴에 크림 파이 세례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최근 말린스에서 은퇴한 81세 잭 맥키언 감독이 당시에도 플로리다를 맡고 있었습니다. 맥키언 감독은 "실은 그 친구(최희섭), 순둥이가 아니야. 요새 아웃 당하고 들어오면 속상한 심정을 많이 표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최희섭은 그렇게 멋진 꼬마다. 살살 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배트를 가루로 만들 것처럼 두들기곤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마냥 침울해하는 것 보다는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날 최희섭은 "얼마나 자주 그랬는 지는 말씀 못 드리겠다. 분명한 건 시카고 컵스에서 루키로 있을 때는 감히 그럴 생각을 못 했다"면서 웃었습니다.
사실 야구 선수가 부진할 때 화를 내며 자학한다고 해서 성적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엔 여린 것 같은 최희섭이 알고보면 불같은 성격도 있다는 걸 보여준 일화였습니다.
2011년의 최희섭은 분명 팬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년이 기대되는 선수중 한명입니다. 누구보다 최희섭 본인이 벼르고 있을 겁니다.
광주=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