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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바탕으로 친구 같은, 형 같은 코치가 되고 싶습니다."
특히 김상엽 코치의 영입이 눈에 띄었다. 김 코치는 NC에서 프로 지도자로서는 첫 발을 내딛게 됐다. 그는 89년 대구고를 졸업한 뒤 삼성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90년 12승6패 18세이브 방어율 2.81을 기록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 코치는 150㎞에 이르는 강속구와 당시만 해도 보기 드물었던 파워 커브를 앞세워 삼성의 전천후 에이스로 활약했다. 특히 93년에는 국보급 투수로 꼽혔던 선동열 삼성운영위원을 제치고 탈삼진왕(170개)에 오르기도 했다. 통산 성적은 78승56패 49세이브에 방어율 3.39.
하지만 선수 시절 그는 지나치게 혹사당했다. 좋은 성적을 낸 이듬해에는 부상 탓에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격년제 에이스'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93년 181⅓이닝을 던지면서 13승6패 8세이브를 기록한 뒤 이듬해에는 24⅔이닝 2승2패에 그쳤다. 95년엔 선발로만 191⅔이닝을 던지고 17승7패를 기록한 뒤, 96년 21이닝 3승1패 1세이브로 무너졌다. 97년(150⅔이닝 12승6패)과 98년(36⅔이닝 3승3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2000년 LG로 이적한 뒤 2경기서 6⅔이닝 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였다.
김상엽 코치는 "다 지난 일이다. 당시 내 몸이 많은 이닝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후배들에게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은퇴의 계기가 된 수술 후 재활 과정을 이겨내지 못한 아쉬움은 커보였다.
김 코치는 첫 훈련이 시작되자 열성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워밍업 시 스트레칭을 할 때 일일이 잘못된 자세를 교정해주는 등 세심한 모습이었다. 그는 "물론 코치란 자리가 가르치는 자리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친구 같은, 형 같은 코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워밍업과 러닝이 끝난 뒤 진행된 투수조 수비훈련에서 30분 넘게 혼자 펑고를 쳐주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김 코치의 영입은 구단이 먼저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관계자는 "은퇴 후 영남대 투수코치로 좋은 지도력을 보였고, 일본에서도 1년간 경험을 쌓고 왔기에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신생구단 NC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가 필요했다. 또한 부상으로 조기 은퇴했던 아픔을 거울삼아 그가 따뜻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과거 삼성에서 코치로 뛸 때 김상엽 코치를 직접 지켜봤던 NC 김경문 감독 역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워낙 화려하지 않았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선수들을 잘 이끌어 나갈것"이라며 미소지었다.
김 코치는 "프로 지도자로 다시 데뷔해 설레는 마음이 크다.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크다"라며 "아직 투수코치 4명이 어떤 보직을 맡게될 지 정해지지 않았다.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겠다. 좋은 선수들을 발굴해 내후년 1군에서 선보이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강진=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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