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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번 타자'였다. 과거형이다. 지금 KIA 최희섭은 '7번 타자'로 나온다.
네거티브 마인드의 악순환, 빅초이를 잠식하다
1차전만 놓고 본다면 최희섭은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병살타 1개를 포함해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컨디션과 경기감각이 모두 최악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최희섭에게는 득점 찬스가 자주 걸렸다. 4회 무사 1, 2루가 있었고 9회에는 1사 만루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최희섭은 모두 땅볼에 그쳤다. 심지어 4회에는 2루수 앞 병살타였다.
이 당시 최희섭의 심리는 부정적인 요소로 가득차 있었다. 시즌 막판 최희섭은 발가락 미세골절과 허리통증 재발로 인해 9월10일 이후 거의 한 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면서 경기감각은 극도로 떨어졌다. KIA 조범현 감독이 타순을 7번으로 내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희섭은 이미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고, 부상에 대한 걱정이 가득차 있는 상태다. 무의식적으로 플레이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스스로에 대한 부정심리가 활력을 앗아간 케이스다.
밀어친 홈런, 악순환의 고리를 깼다
그렇게 의기소침해진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심리적 악순환의 고리를 깨는 것인데, 이는 선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감독이나 코치의 조언보다 본인의 플레이 하나가 제대로 들어맞으면 긍정적인 생각의 불씨를 당길 수 있다. 최희섭이 2차전에서 친 홈런은 바로 그 도화선이었다.
사실 홈런타구를 날릴 때까지만 해도 최희섭은 여전히 '부정의 악순환'에 묶여 있었다. 낮은 궤적을 그리며 라인드라이브성으로 날아간 타구를 보며 1루로 뛰었던 최희섭은 SK 좌익수 박재상이 펜스 앞에서 훌쩍 뛰어오른 뒤 SK 투수 송은범이 박수를 치는 것을 보고 '잡혔구나'라고 여겼다. 얼핏 보기에도 타구가 박재상의 글러브로 빨려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고개를 떨군 최희섭은 1루와 2루 중간 쯤에 멈춰 KIA 덕아웃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타구가 담장을 넘어갔다는 사인을 보자 다시 베이스를 돌았다.
최희섭이 달라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밀어친 타구가 홈런이 되면서 부정적 심리를 벗어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후 최희섭의 스윙은 보다 호쾌해졌고, 연장 10회에 선두타자 안타로 이날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표정이나 행동에서는 전에없던 자신감도 묻어났다. 결국 홈런 한방으로 인해 최희섭의 부정적 심리의 고리는 완전히 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