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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식 좌충우돌 야구', 그 끝은 어디일까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0-10 11:36


이런 장면, 쉽게 보기 어렵다. 적어도 이전까지의 프로야구판에선 말이다. SK 이만수 감독대행(오른쪽)이 9일 KIA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7회에 대타 안치용의 동점홈런이 터지자 덕아웃을 박차고 나오며 환호하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헐크' 감독이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SK 이만수 감독대행이 준플레이오프에서 독특한 경기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준플레이오프가 2차전까지 치러진 상황에서 SK와 KIA는 1승1패로 균형을 맞췄다. 무엇보다 이번 준플레이오프는 베테랑 사령탑인 KIA 조범현 감독과 초보 사령탑인 이만수 대행의 수싸움이 관심을 모았다.

만수? 아니 오직 한수

프로농구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 이름 앞에 '만수(萬手)'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정말 다양한 지략으로 한차원 높은 수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이만수(李萬洙) 대행은 적어도 '만수(萬手)'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오직 한수다. 평소 이 대행은 투수교체와 관련해 소신을 밝히곤 했다. "불펜투수들의 당일 컨디션과 함께 내 감을 믿는다"고 말한다.

스몰볼 보다는 롱볼을 선호하는 이만수 대행이다. 경기중 덕아웃에서도 거침없이 감정표현을 하는 사령탑이다. "내 감을 믿는다"는, 여타 지도자들은 내뱉기 힘든 표현을 스스럼없이 쓰는 것도 분명 독특한 면모다.

실제 경기 상황에서 드러나고 있다.

'좌우놀이' 무시한 교체


야구팬들이 만들어낸 또하나의 비공식 용어가 있다. '좌우놀이'란 것인데, 감독이 투수교체때 상대 타자의 좌우 유형에 따라 매번 그에 상응한 투수를 투입한다는 의미다. 즉 왼손 대타가 나오면 왼손 스페셜리스트를 올리고, 오른손 대타가 나오면 오른손 투수로 바꾸는 식이다.

야구팬들이 쓰는 '좌우놀이'란 표현에는 일정 부분 비꼬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너무 틀에 박힌 공식처럼 투수를 교체하고, 그러면서도 나쁜 결과가 많이 나올 때 이같은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9일 2차전에서 이만수 대행은 '좌우놀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데이터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운용을 선보였다.

SK가 1-2로 뒤진 7회에 이만수 대행은 선발 송은범에 이어 왼손 박희수를 올렸다. 송은범이 고군분투했으니 바꿀 타이밍은 분명했다. 그런데 왼손투수 박희수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KIA 타선은 김상현 안치홍 등 오른손타자가 대기중이었다. 치열한 접전 상황에서 왼손투수가 등판하자마자 상대하기엔 부담을 느낄만한 조건이었다.

또다른 장면이 있었다. SK 세번째 투수인 오른손 언더핸드 정대현은 9회에 등판한 뒤 연장 10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첫타자 최희섭을 상대했다. 최희섭은 왼손 거포 스타일이다. 최희섭이 이 대목에서 안타를 기록했다. 그후에야 이만수 대행은 투수를 정대현에서 왼손 정우람으로 교체했다.

이 또한 독특했다. 오른손 정대현을 굳이 왼손 최희섭과 상대하게 한 뒤에야 교체한 건 시선을 끌만한 일이었다. 왼손 정우람을 이닝 시작부터 올려서 최희섭과 맞붙게 하는 게 보다 일반적일 것이다. 물론 이같은 모든 결정은 이 대행의 '감'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신산'과는 다른 헐크 스타일

프로바둑 기사인 이창호가 한창 이름을 떨칠 때 '신산(神算)'이란 닉네임을 얻었다. 끝내기에 강하고 워낙 집계산을 잘 하기 때문에, 이창호는 별다른 눈에 띄는 전투 없이 늘 계가때 두세집을 승리하는 강점을 보여주곤 했다.

야구로 치면 김성근 전 SK 감독이 '신산' 스타일이었다. 단기전에서 1,2차전을 진 뒤에도 "다 계산했던 부분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해 취재진을 놀라게 만들곤 했다. 김 전 감독은 그후 거짓말같이 역전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9점차로 앞선 9회 2사후에도 왼손투수를 투입해 일말의 가능성을 없애는 치밀함도 유명했다. 바둑기사 이창호의 끝내기도 잔인하다싶을 만큼 냉철했다.

이와는 달리 이만수 대행은 '좌충우돌'이다. 혹시나 해서 다른 팀 지도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SK가 2차전에서 보여준 투수교체는 분명 일반적인 패턴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데이터와 전력 유형도 일정 부분 감안하겠지만, 이 대행이 기본적으로 감을 믿는 스타일이기에 다른 팀이 보기에도 독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현재까지는 이같은 감의 야구가 일정 부분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2차전의 투수교체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또한 1차전과 2차전에서 SK는 대타 홈런이 한차례씩 나왔다. 2차전 7회에 나온 안치용의 대타 동점홈런은 경기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한방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때 야구대표팀의 김경문 감독이 독특한 자신만의 밀어붙이기 야구로 9연승 우승을 차지했다. 이만수 감독대행은 과연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야구에 정답은 없다는 가정하에, 일단 이만수 대행의 야구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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