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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기자가 본 양승호 "유쾌하면서 정확한 옆집 아저씨"

권인하 기자

기사입력 2011-10-05 12:51


환하게 웃고 있는 롯데 양승호 감독. 스포츠조선DB

롯데 양승호 감독을 보면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언제나 밝게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면 기자들도 미소를 짓게되고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 어제 애기는 혼자서 잘 봤어?" 기자의 개인적인 일을 기억했다가 물어보기도 한다. 너무 친근한 탓에 기자가 개인적인 얘기를 하게되는, 어떻게 보면 야구감독이 아닌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한다.

예전 두산 담당을 했을 때인 2002년에도, 2006년 힘든 LG의 감독대행을 할 때도 인간 양승호는 유쾌했다. 그와의 대화는 항상 농담과 재미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야구얘기보다 야구 외적인 얘기가 더 많다. 그래서 몇몇 기자들은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기사로는 쓸 수 없는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에겐 팬들의 비난도 재밌는 에피소드로 바뀌었다. 한참 롯데가 부진했던 4월. 양 감독은 대패한 날 택시를 탄 얘기를 했다. "해운대에서 코치들하고 간단히 술한잔 먹고 택시를 탔어. 택시기사와는 말도 안하고 고개를 숙이고 왔는데 도착하자 택시기사가 '감독님 지고 맥주가 목에 들어가는교? 타자들 좀 단디하라고 하시소'라고 하더라. 나를 알더라고. 깜짝 놀랐어"라고 하더니 "내가 돈을 내고 몇 천원 남은 잔돈을 주려할 때 괜찮습니다라고 하니까 그 기사가 '통은 크네'라고 하더라"고 말해 덕아웃이 빵 터졌다.

그런 팬들의 반응을 소재로한 유머는 성적이 올라가면서 바뀌었다. "병원에 문상을 하고 나왔더니 롯데 감독이 온 것을 듣고 환자들이 사인받으려고 나와있더라", "처음으로 팬한테 선물도 받았다" 등으로 좋아졌다. 그냥 농담만이 아니다. 그 속에 자신의 뜻이 담긴 경우가 많았다. 한창 잘나가던 8월에도 "지금은 팬들이 잠복기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른다"라는 농담을 했다. 자기 스스로가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는 뜻을 농담 속에 넣었다.

모바일 메신저나 문자 메시지로 많은 비난이 그에게 직접적으로 와도 웃음으로 넘기던 그가 심각할 때가 있었다. 한날은 기자들에게 "길 갈 때 등뒤를 조심해라는 문자가 왔어. 아무래도 이건 좀 심한 것 아냐?"라고 말하면서 전화번호를 바꿔야겠다고 했다. 양 감독은 결국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을 찾았다. 중학생이더란다. 그 아버지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과를 받았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고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그의 야구에 그대로 녹아있다. 감독으로서 별다른 작전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승부를 걸어야할 타이밍엔 과감한 작전이나 대타, 투수교체로 승기를 잡았다.

선수들에게나 코치들에게도 언제나 쾌활하다. 처음엔 선수들은 양 감독의 농담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으나 이젠 그렇지 않다. 그런 유쾌함 속에서 선수들은 그와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부산 두산전. 경기를 앞두로 양 감독은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손아섭을 불렀다. "너 뛸 수 있겠어?" "수비훈련할 때 통증이 좀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 손아섭은 그날 선발에서 제외됐다. 2위 싸움을 하는 치열한 상황에서 중심타자는 중요했다. 하지만 그가 아프다는 말에 곧바로 오더에서 그를 지웠다. 미련이나 아쉬움도 없었다.자기 몸을 자기가 가장 잘 아니까 그의 의견을 받아주는 것.

농담이 많지만 허투루 말하는 법은 없다. 고원준이 자주 숙소 입소 시간을 지키지 않자 그에게만 정확한 입소시간을 정해준 양 감독은 그러면서 "잘던지면 상을 줘야지"라고 했다. 그리고 8월 10일 부산 넥센전서 7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자 진짜 명품 구두를 선물했다.


취재기자로서 양 감독과의 술자리도 몇차례 가졌다. 내심 그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혹시나 구단이나 선수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번번이 헛탕이었다. 술자리에서 그는 오히려 더 야구얘기를 안했다. 야구얘기를 꺼내려고 해도 슬쩍 넘어가고 어느새 다른 주제의 얘기를 했다. "즐겁게 술을 마셔야지 여기까지 야구얘기 해서 뭐해." 그는 그것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풀었다.

선수 기용이나 투수 교체 등에 대해 물어보면 "코치들과 상의해서", "코치한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의 야구론은 "야구는 선수가 하고 코치는 선수를 가르치고 감독은 선수단이 흐트러지는 것을 잡아주면 된다"다. 사사건건 터치하는 감독이 아닌 선수와 코치가 스스로 자기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 실제로 그랬다. 코치들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줬다. 공필성 수비코치는 "이때까지 모셔본 감독님 중에 코치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게 코치들에게 오는 압박은 훨씬 세다.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공부도 해야하고 경기도 예전보다 더 자세히, 분석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상대에 대한 분석도 해야한다. 감독님이 물어보실 때 곧바로 내 의견을 말해야하니까"라고 했다.

발이 넓기로 소문난 양 감독이 아직 부산에 친한 지인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좀처럼 부산에서는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 가끔 서울에서 오는 지인들과 밥먹는 정도가 전부다. 구단에서 양 감독에게 내준 승용차를 타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파트에서 야구장까지 걸어오면 되고, 외부에 거의 나가지 않으니까 써본 일이 없다"고 했다. 초반 워낙 팬들에게 시달렸던 탓일까.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직행을 선물한 감독을 이젠 부산팬들이 마음을 활짝 열어 안아줘야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부산=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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