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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억원에 어떤 미련도 없었던 김성근 감독, 그는 누구인가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1-08-19 10:11 | 최종수정 2011-08-19 10:11


김성근 감독. 스포츠조선DB

확실히 SK 김성근 감독, 아니 이젠 전 감독이다.

17억원을 단칼에 내려놓을 수 있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마디로 그는 야구의 '장인'이다.

이제 소용없는 가정법일 뿐이다. 김 감독이 SK와 재계약을 했다면, 최소 17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시즌 초 SK 측은 재계약 방침을 결정하면서 "감독 최고 대우는 당연하다"고 했다.

정말 당연했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세 차례의 우승과 한 차례의 준우승. 정말 빛나는 성과였다. 중위권인 SK가 단숨에 'SK 왕조'를 건설한 이유는 김성근이라는 존재를 빼면 설명할 길이 없다.

협상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지만, 3년 계약과 함께 계약금 5억원 이상, 연봉 4억원 이상은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김 감독이 SK와 재계약을 맺었다면 최소 17억원을 쥘 수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SK 구단 측이 재계약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김 감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건 맞다. 그러나 확실히 SK는 재계약 의사가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감독에게 불만이 있어도, 지난 4년간의 빛나는 공적은 재계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버릴 수 없는 소신과 원칙이 있다. 너무나 엄격해 프로야구를 운영하는 모 기업이 직접, 간접적으로 구단 운영에 관여하는 한국 프로야구 현실과 상극이다.

김 감독이 OB, 태평양, 쌍방울, LG,SK 등 거쳐갔던 모든 구단마다 고위관계자들과 마찰과 갈등을 일으킨 이유였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시절부터 그는 오기와 근성 하나로 버텼다. 그의 삶을 지탱해 준 힘은 오직 야구, 야구 뿐이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처절한 노력으로 극복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1969년 마산상고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면서 이런 김성근 감독의 특징은 더욱 뚜렷해졌다. 자신의 야구를 구현하는데, 그리고 순수한 야구발전에 저해된다고 판단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당연히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여기에 그의 승부사 기질이 보태졌다. 그라운드에 안에서 김 감독은 그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이기는 야구가 아닌 지지 않는 야구'를 주장했다. '이기는 야구'가 상대적인 것이라면, '지지 않는 야구'는 절대적인 개념이다. 즉 자신의 전력을 빈틈없이 보강하고 준비해야 어떤 상대를 만나서도 지지 않는다는 개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했다. SK의 스프링캠프가 지옥훈련으로 악명을 떨친 이유. 스스로도 상대의 전력을 빈틈없이 파악하고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 때문에 직, 간접적으로 야구단 운영에 대해 관여하는 모기업의 존재 자체는 그에게 '필요악'이었다.

기존 스타급 선수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한국으로 유턴하는 김태균에 대해 "너무 나약한 게 아닌가"라고 말한 게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다. 기술적,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특정 스타 선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 모습이 간섭이나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비춰지는 부작용도 낳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주저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떤 선수가 자신의 한계를 딛고 일어난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그와 개인적으로 대화하다보면 놀랄 때가 많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고집세고 섬세하고 원칙에 철저한 장인'의 이미지.

하지만 그는 인간적으로 '쿨'했다. 그라운드 안에서의 신경전을 밖에까지 가지고 가지 않았다.

두산 김경문 감독의 자진사퇴 소식을 듣고 "아 정말 왜 그랬지. 김 감독이 두산을 오늘날 이렇게 만들었는데"라고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사실 SK와 두산은 그라운드 안에서 신경전을 많이 벌이지 않았나요'라고 기자가 되묻자 "그건 야구장에서 경기할 때 일이고. 한국야구에서 김경문 감독은 아무 큰 공헌을 한 사람인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유머감각도 풍부했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는 '비'다. '내일 선발이 누굽니까'라고 물으면 싱긋이 웃으며 '우리 내일 선발은 비야'라고 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의 기상청에까지 문의해 날씨를 파악한 뒤 던진 우스갯 소리. 그는 한 술 더 떠 "이제 나한테 비 혹사논란이 생길 지 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에게 항상 따라붙는 '투수 혹사논란'을 빗대 말하는 농담이었다.

그는 화끈하고 성격이 급했다. 모든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정곡을 찔렀고, 바로바로 일을 처리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항상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 보니 생긴 일종의 생활습관이었다.

이런 성격은 협상과는 상극이다. 협상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양보와 타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17억원이라는 거액을 한 치의 미련없이 포기한 건 당연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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