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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만남은 아이러니컬하다. 너무나 극단적인 스타일 때문에 기괴함이 느껴질 정도다.
지난해 안치용과 김성근 감독의 결합 과정부터 돌아보자.
야구보다 놀러다니는 게 더 좋았다
그러나 너무 게을렀다. 연세대에 진학한 안치용의 기량은 발전하지 않았다. 2002년 프로에 데뷔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까지 가장 높았던 타율은 2할2푼2리. 2006년까지 1할대 타격이었다. 항상 방출의 경계선상에 있었다. 2008년 LG의 3번타자로 2할9푼5리, 52타점을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그의 타격자질을 감안하면 '불완전 연소'의 느낌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안치용은 4일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그때 그냥 주위 사람들과 놀러다니는 게 좋았다. 야구는 뒷전이었다. 야구에 대한 집중력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올해 32세의 나이. 그러나 아직 보여줄 게 너무나 많은 안치용이다.
게으른 천재의 SK 생존법
안치용은 올해 지옥훈련의 대명사인 SK의 전지훈련을 온 몸으로 버텼다. 그의 자질을 충분히 알고 있는 SK 김성근 감독이 그냥 놔둘 리 만무했다.
안치용은 "SK 유니폼을 입고 확실히 야구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했다.
SK 특유의 엄청난 훈련량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살다살다 이렇게 많은 연습을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좌충우돌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다.
스스로도 "SK 와서 많이 자제하고 있다. 내 성격은 확실히 다르다. 김 감독님도 그걸 알고 'SK에 없는 스타일의 선수'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고 했다.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외야 펑고를 받다가 잠시 사라졌다. "코치님이 친 공이 펜스 뒤로 넘어가버렸다. 그래서 볼을 주우러 간다고 핑계대고는 10분 정도 쉬다온 적도 있다"고 했다. SK 분위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생존을 위한 나름의 적응방식이었다. 이런 성격에 대해 김 감독도 알고 있다.
SK의 전지훈련이 안치용에게 많은 부담이 되리라는 것도 예상했다. 하지만 견디면서 극복하지 않으면 그의 천재적인 타격자질도 발휘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안치용이 올 시즌 초반 잔부상으로 재활군으로 내려갔을 때, 김 감독은 서두르지 않았다. 면담 한 번 한 적이 없다. 안치용은 "가끔 지나가다 감독님이 '타격할 때 몸이 앞으로 쏠린다', '몸이 먼저 나간다'와 같은 말씀을 하실 뿐이다. 모니터로 확인해보면 정말 그랬고, 즉시 수정했다. 그러나 면담은 올 시즌들어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좋은 타격자질을 가진 안치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쓰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시즌 초반 부상 역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준비없는 맹타
안치용의 천재성은 최근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재활군에 있다가 2군경기 출전 없이 곧바로 1군에 올라왔다. 그리고 연일 맹타를 터뜨리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 안치용은 무덤덤하다. "재활군에서 곧바로 올라와서 공이나 보일까 했는데, 크게 보이더라"고 했다. 몸이 좋은 상태는 아니다. 아직까지 어깨와 허리가 완전치 않다. 그는 "경기를 치르면서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 감독 역시 "안치용의 활약은 일시적인 게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SK 유니폼을 입고 야구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점, 오키나와 전지훈련 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배팅 매커니즘의 확립이 후반기 맹활약의 기본적인 원동력이다.
그러나 예상밖의 맹활약에는 세부적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안치용은 "나는 언제나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간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구를 노린다면 1, 2타석을 버려도 계속 직구만 노린다"고 했다.
그러나 SK의 무한경쟁 시스템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한 타석, 한 타석이 조급했다. SK는 주전경쟁이 너무 치열한 곳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걸 인식하고부터 타석에서 '이번에 못 치면 다음에 치면 된다'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들어섰다. 그러자 내 스윙이 나왔고, 내 노림수가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이제 안치용의 팀내 입지는 넓어졌다. 변변한 해결사가 없던 SK에게도 안치용의 활약은 가뭄의 단비다. 가장 게으른 천재와 가장 독한 감독의 만남. 시너지 효과는 점점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