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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첫 승 KIA 김희걸. 그 초조했던 심정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1-08-04 22:00 | 최종수정 2011-08-04 22:00


4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기아와 두산의 경기. 5회말 무사 1루 두산 손시헌의 번트 타구가 뜨자 기아 투수 김희걸이 잡고 있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첫 승이잖아요. 첫 승…"

한 업계에서 10년 이상 몸담으면 '베테랑'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세대가 된다. 기쁜 일도, 궂은 일도 여러차례 넘기면서 점점 쉽게 흥분하거나 들뜨지 않게 된다. 이른바 '관록'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는 것이다.

그는 프로 11년차 투수다. 나이도 서른이 됐다. 이제는 프로에 처음 입문했던 19살 때처럼 쉽게 들뜨거나 실망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4일 잠실 두산전. '첫 승'이 주는 짜릿한 쾌감과 희열앞에 KIA 투수 김희걸(30)은 무장해제됐다. 시즌 첫 승, 그리고 1484일 만의 선발승이 눈 앞에 다가오자 신인처럼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입은 바짝바짝 말라갔다. 팀 마무리 한기주가 9회말에 1점을 허용하며 2-1로 추격당할 때 머리속으로는 '믿는다, 기주야!'를 외쳤지만,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렇게 힘겹게 김희걸은 첫 승을 품에 안았다.

나는 스윙맨, 그래도 승리는 달콤하다.

김희걸의 팀내 보직은 '스윙맨'이다. 주로 중간계투로 긴 이닝을 던지다가 선발 로테이션에 빈자리가 생기면 선발로도 변신한다. 팀으로서는 그만큼 유용한 선수가 없다. 하지만, 등판 형태가 들쭉날쭉하다보니 승리와는 인연을 잘 맺지 못할 수 있다. 김희걸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올해 김희걸은 시즌 첫 등판(4월8일 잠실 두산전)을 중간계투로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등판은 선발(4월13일 광주 넥센전)이었다. 결국 전반기에 김희걸은 16번 경기에 투입됐는데 이중 4회를 선발로 뛰었다. 후반기에도 첫 시작은 선발(7월27일 광주 삼성전)이었다가 나흘 뒤에는 중간계투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4일 뒤인 이날에는 선발로 변신했다. '트랜스포머'가 따로 없었다.

중간계투나 대체선발로 나서 곧잘 승리를 따내는 선수도 있다. 올해 벌써 10승을 거둔 삼성 안지만이 그 좋은 예다. 하지만, 김희걸은 승운마저 따르지 않았다. 안지만에 비해 구위가 좋은 선수는 아니지만, 올해 3패만을 거둔 것은 '불운'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0년 8월24일 부산 롯데전에서의 구원승 이후 345일 간 승리가 없었다는 것이 김희걸의 불운을 잘 설명한다. 선발승은 더 오래전이다. 2007년 7월12일 광주 삼성전 이후 짜릿한 선발승의 쾌감을 맛보지 못했다.

떨리는 심정, 첫 승앞에 심장은 요동쳤다.

이날 경기에 앞서 김희걸은 투지를 단단히 다졌다. 팀이 주전 연쇄부상으로 위기를 맞은 상황이라 "내가 잘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래서 구종을 직구-슬라이더로 단순화하고, 공격적으로 정면승부했다. 김희걸의 공을 받은 차일목은 "희걸이가 여러 구종을 갖고 있지만, 다 좋지는 않다. 그래서 좋지 않은 구종은 버리고 단순하게 승부했다"고 호투의 비결을 밝혔다.


지난 7월27일 광주 삼성전에 선발로 나와 4이닝 3안타(1홈런) 3실점으로 패전을 기록한 김희걸은 이날은 맞혀잡는 피칭을 앞세워 5회까지 3안타 2삼진 무실점으로 잘 던졌다. 5회까지 투구수가 겨우 58개. 이닝당 12개가 채 안되는 짠물피칭'의 정수였다. 김희걸은 "수비진의 도움이 컸다. 범호가 오늘 경기에 앞서 '네가 수비를 믿어주기만 하면 된다. 유격수도 자신있다'고 힘을 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KIA수비진은 4개의 병살플레이를 만들어내며 김희걸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1-0으로 앞선 5회까지 던지며 승리요건을 채운 김희걸은 덕아웃에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처음에는 담담하던 가슴은 경기 종료가 임박할수록 요동쳤다. 드디어 운명의 9회말. 한기주가 선두타자 김현수를 볼넷으로 내보내자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기주가 꼭 막아줄 거라고 믿었어요. 그건 흔들리지 않았죠.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니까 심장이 점점 터질것만 같더라고요". 김희걸은 심호흡도 하고, 얼굴도 쓸어내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결국 그 초조한 믿음은 '첫 승'의 결실을 맺었다. 그제야 김희걸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1483일 만에 짓는 미소였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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