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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잔디가 홈런왕 이대호를 살렸다."
이 트레이너는 사직구장이 인조잔디였던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롯데에서 근무했고, 잠깐 다른 종목을 거쳐 2007년부터 롯데에 복귀한 베테랑이다. 사직구장은 2006년 천연잔디로 바뀌었다.
이 트레이너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야구라는 종목은 인조잔디에서 하면 안된다는 명확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 특히 간판 홈런타자 이대호를 대표적인 예로 들며 천연잔디가 아니었다면 이대호의 경기력과 선수생명에 커다란 영향이 미쳤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조잔디와 천연잔디 시절 현장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 트레이너는 이대호의 발목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대호는 고질적인 오른쪽 발목 부상을 안고 있다. 작년 9월 경기 도중 발목을 접지르면서 더 악화됐다. 그런데도 3일 현재 홈런 1위(22개), 타율 1위(3할5푼2리), 타점 공동 1위(75점) 등 강타자의 위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천연잔디 덕이 크다는 것이다. 이대호같은 거구(키 1m94, 몸무게 130㎏)가 성치도 않은 발목으로 인조잔디에서 훈련하고 경기를 했더라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라는 게 이 트레이너의 설명이다. 이 트레이너는 "과거 매트처럼 딱딱한 사직구장 인조잔디는 정상인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발목, 허리 등에 무리가 느껴질 정도였다"면서 "이대호같은 특수체격에 발목 부상까지 있다면 지금처럼 출전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호가 지난해 7관왕을 차지하고 롯데가 2년 연속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천연잔디로 인한 경기력 향상 효과 덕분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실제 인조잔디 시절인 2002∼2005년 이대호의 평균 타율을 2할5푼9리로 평범했지만 천연잔디로 바꾼 2006년부터 현재까지는 3할2푼7리로 향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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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피나도록 밤새 맛사지했다
이 트레이너는 인조잔디 시절 트레이너 사이에서 유행했던 법칙을 소개했다. '앞으로 넘어지면 100% 화상, 옆으로 넘어지면 골절상, 뒤로 넘어지면 뇌진탕.' 이 트레이너는 "그 때를 회상하면 정말 악몽같은 나날이었다. 경기가 끝나면 밤새도록 손가락 지문이 닳고 피가 나도록 밀려드는 선수들을 맛사지 해줘야 했다"고 말했다. 인조잔디로 주로 발생하는 부상은 햄스트링, 허리, 목, 다리 부상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롯데 스타였던 김응국은 허리 통증, 공필성은 햄스트링, 전준호는 다리 통증을 달고 살아야 했다. 이 트레이너는 하루 평균 20명의 선수들을 맛사지 했다. 20명이면 그날 경기에 출전한 선수 전원인 셈이다. 특히 화상 환자도 많아서 호주에서 특수 화상치료제를 공수해 오는 등 롯데에는 온갖 희귀한 약품이 많기로 소문났다. 다른 팀 선수들이 출장 치료를 받으러 오기도 했단다. 그래서 당시에는 다이빙 캐치를 하지말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이 트레이너는 "지금도 대구나 광주 원정을 가면 항상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 일이 없어졌을 정도다
천연잔디로 바뀐 뒤 이 트레이너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라고 했다. 잔디 때문에 생긴 부상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워낙 많아서 일일이 집계하지는 않았지만 부상 횟수가 70%는 줄어들었다고 확신했다. 지금은 밤새 맛사지하는 일은 없고, 재활선수나 출전 투수들 몸상태 점검해주는 정도다. 이 덕분에 선수 관리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병원비, 약값 등도 크게 줄었다. 무엇보다 기술적인 수비가 많아지는 등 좋은 플레이가 크게 늘어나 선수와 팬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했다. 이 트레이너는 "인조잔디에서는 선수생명이 단축되는 것은 확실하다. 각종 치료비와 선수의 몸값 등을 감안하면 천연잔디와 인조잔디의 비용은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인조잔디는 물을 충분히 뿌린 뒤 사용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야구공은 물에 젖으면 안된다. 야구는 인조잔디에서 절대로 하면 안되는 종목이다"고 강조했다.
대전=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