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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스 vs 양의지, 누가 더 오버했나?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1-08-02 21:23


KIA 선발투수 트레비스가 2일 잠실 두산전에서 2회 양의지에게 솔로포를 허용하고 베이스를 도는 양의지에게 불만섞인 말을 했다. 그러자 두산 김민호 코치가 마운드를 내려가는 트레비스에게 재차 경고를 하고 있다. 잠실=홍찬일기자hongil@sportschosun.com

과도한 홈런 세리머니?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부족?

아주 잠시였지만,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두산과 KIA가 맞붙은 2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때는 1-4로 뒤진 두산의 2회말 공격. 1사 후 타석에 나선 8번타자 양의지는 KIA 선발 트레비스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6구째 몸쪽 높은 직구(시속 137㎞)를 힘껏 잡아당겼다. 높이 뜬 타구는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좌측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뒤로 돌아 타구를 바라본 트레비스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양의지는 오랫동안 타구를 바라보다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여기까지는 경기 중 흔히 나올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이후부터 잠시 낯선 장면이 나왔다. 양의지가 2루 베이스를 돌고 있는 사이 두산의 1루 주루코치로 나가있던 장원진 코치가 심판진에게 "트레비스가 양의지에게 거친 말을 했다"며 어필했다. 그러자 심판진은 KIA 통역을 마운드로 불러 트레비스에게 "경기 중 타팀 선수에게 불필요한 말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이렇게 꺼진 듯 했던 분쟁의 불씨는 2회말이 끝난 뒤 다시 타올랐다. KIA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트레비스에게 이번에는 두산 3루 주루코치로 나가있던 김민호 코치가 또 주의를 준 것. 그러자 이번에는 KIA 최태원 코치 등이 나와 김민호 코치에게 항의했다. 역시 "왜 우리 투수를 흔드느냐"는 내용. 약간의 논쟁이 오갔지만, 다행히 사태는 이쯤에서 마무리됐다.

상대를 무시하는 홈런 세리머니, 그 자체가 문제.

KIA 관계자를 통해 알아보니, 트레비스는 한동안 타구를 바라보며 빨리 베이스를 돌지 않는 양의지에게 "왜 홈런을 치고 나서 빨리 베이스를 돌지 않나"라고 외쳤다고 한다. 결국 양의지의 '홈런 세리머니'가 불만이었던 것이다. 메이저리그로 대표되는 서양 야구문화에서는 타자가 홈런을 친 뒤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빨리 베이스를 도는 것이 미덕이다. 홈런을 맞은 상대투수에 대한 배려차원에서다. 만약 홈런을 친 뒤 타구를 너무 오래 바라보거나 두 팔을 치켜드는 행동, 그리고 베이스를 돌며 과도하게 기쁨을 표현하는 행동을 하면 '예의없는 선수'로 찍혀 즉각 '응징'을 받는다.

현재 국내에서 뛰는 외국인 투수들은 모두 이런 문화 속에서 야구를 배웠다. 메이저리그 경험자라면 '홈런 세리머니'에 대해 더 큰 반감을 갖게 된다. 얼마 전 넥센의 외국인 투수 나이트도 "홈런 세리머니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 타자들의 과도한 홈런 세리머니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트레비스도 이같은 맥락에서 양의지에게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과도한 홈런 세리머니'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볼 지.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이같은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을 엄격히 적용해야 하는지 여부다. 국내 선수들 사이에도 '과도한 홈런 세리머니 금지'에 관한 불문율은 분명히 있다. 과거 프로원년 이만수처럼 두 팔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며 베이스를 도는 케이스는 현재로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이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김없이 '응징'이 뒤따른다. 그래서 최근 선수들은 홈런을 친 직후에는 너무 과한 행동은 자제하는 편이다. 베이스를 돌고난 이후 덕아웃 앞에서 동료들과는 기쁨을 나누지만, 웬만한 경우에는 조용히 베이스를 돈다.

이날 홈런을 친 양의지는 어땠을까. 분명히 평소와는 달리 다소 오랫동안 선 채 타구를 바라보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이 상대를 도발하거나 과도한 기쁨을 표현한 세리머니라고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물론, 홈런을 맞은 트레비스의 입장에서는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엄격한 메이저리그 식이 아닌 한국야구 식이라면 '과도한 세리머니'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최근 3경기 연속으로 불펜난조로 승리를 날리며 민감해진 트레비스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소 오버액션을 했다는 것이 이날 현장의 평가였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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