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페르난도 빈볼성 공에 격분한 이유는?

◇프로야구 롯데와 두산의 경기가 31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펼쳐졌다. 이대호가 5회말 머리 쪽으로 날아온 페르난도의 볼에 화를 내자 홍성흔이 달려가 말리고 있다.
 부산=전준엽 기자 [e-mail]

롯데 이대호와 두산 페르난도는 악연일까.

31일 롯데와 두산의 경기가 열린 사직구장에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상황은 5회말 롯데 공격. 1사 1루 상황서 타석에 이대호가 들어섰다. 볼카운트 1-0에서 페르난도가 던진 시속 151km의 빠른 직구가 이대호의 머리쪽으로 향했다. 이대호가 반사적으로 피해 머리나 얼굴에 공을 맞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십년 감수한 이대호는 즉각 반응했다. 방망이를 꼬나들고 마운드에 있는 페르난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대호가 피하면서 투구가 뒤로 빠져 1루 주자 손아섭이 2루로 뛰고있는 인플레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순간 롯데 주장 홍성흔이 가장 먼저 달려나오며 양팀 선수들이 벤치클리어링을 했다.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하던 이대호를 두산 김동주가 말려 상황은 일단락 됐다. 평소 매너 좋기로 소문난 이대호가 크게 흥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호로서는 충분히 빈볼로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호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 두 타석에서 솔로홈런과 안타를 기록, 2개의 타점을 올리며 페르난도를 괴롭혔다. 여기다 두 사람은 이미 빈볼 문제로 '구원'이 있었다. 페르난도의 한국무대 데뷔전이었던 지난 5월 7일 잠실 롯데전에서 페르난도가 이대호의 등에 공을 맞혀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었다. 당시 기억이 남아있는 이대호로서는 페르난도의 몸쪽 공이 더욱 달가울 리 없었다.

또 한 가지. 불과 이틀 전인 지난 29일 광주 경기에서 KIA 김상현이 넥센 투수 김상수가 던진 공에 얼굴을 맞아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프로선수들은 몸이 재산이다. 때문에 이대호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다.

투수와 타자가 싸우면 절대적으로 투수가 불리하다. 타자는 한 바퀴 돌아 다시 자신의 타순이 돌아오는 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분히 만회할 시간이 있지만 투수는 곧바로 다시 투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흥분한 근육과 정신을 진정시킬 시간이 없다.

역시나 이날의 승자도 이대호였다. 물론 이대호는 이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사건이 난 직후인 3구째에 밖으로 크게 빠지는 볼을 던지며 흔들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호는 그런 페르난도를 상대로 끈질기게 커트를 해내며 무려 9개의 공을 던지게 만들었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는 페르난도의 체력까지 떨어뜨려 놨다. 좋은 구위를 유지하던 페르난도는 결국 6회말 투아웃을 잡아놓고 황재균에게 3루타, 문규현에게 1타점 우전 적시타, 전준우에 투런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이대호가 발끈하자 롯데에 승리가 굴러들어온 셈이다.


부산=김 용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