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승리 주인공 허 웅 데뷔 10년만에 1군 밟은 사연

데뷔 10년 만에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밟은 SK 포수 허 웅.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스포츠조선DB

2002년 프로데뷔 이후 10년 만에 밟은 첫 1군 그라운드. SK 중고 포수 허 웅은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6회 주전 정상호 대신 교체 투입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교체출전. 그러나 허 웅에게는 10년 동안 키워왔던 꿈이 실현된 순간이었다.

어릴 적 사직구장 밖에서 야구공을 던지며 꿈을 키웠다. 그의 어머니 강인자씨(53)는 사직구장 7호 매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정식야구선수가 됐고 잘 나갔다. 부산고 시절 추신수와 함께 배터리를 이루며 전국대회 우승을 하기도 했다. 1군 무대 데뷔는 쉬운 일처럼 보였다.

2002년 당당히 현대에 신인 2차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김동수 박경완 등 당대 최고의 포수가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2군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프로는 너무나 혹독했다.

상무 테스트를 2차례나 받았지만 모두 낙방했다. 할 수 없이 2006년 7월 현역으로 군입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군을 마쳤다. 당시 병역혜택을 받은 부산고 후배 전병두를 만나 물품을 챙겨주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청천벽력같은 일도 있었다. 구단에서 방출된 것이다. 군에서는 그에게 휴가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픈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당장 급한 건 당장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군 제대 후 그는 막막했다. 여러차례 테스트를 받았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어머니는 "니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며 고 말씀하셨지만, 먹고 사는 것이 급했다. 김해에서 호프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허 웅은 "그때 골뱅이 무침을 많이 무쳤죠"라고 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가시지 않았다. 투수 볼을 받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그에게 야구, 그것도 포수는 천직이었다.

끈을 놓칠 수 없었다. 사회인 야구에 등록했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조기축구를 하기도 했다. 낮에는 야구를 하고 밤에는 일을 했다.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마침 일본독립리그를 연결시켜주는 에이전트 지인이 있었다. 달랑 500만원을 들고 아무도 없는 일본으로 향했다. 독립리그에서 8개월을 뛰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야박했다. 그의 포지션은 포수다. 일본인 투수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기량은 괜찮았지만, 벤치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독한 마음을 먹고 건넌 현해탄 너머에서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결국 8개월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자리 걸음이었다. 다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허송세월을 보내던 2008년 7월, 친하게 지내던 SK 금광옥 원정기록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대 시절 허 웅에게 너무나 잘해줬던 배터리 코치였다. 금광옥 기록원은 "SK는 100%의 몸상태만으로 안된다. 400%~500%를 만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곧바로 허 웅은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7월 한달간 자체적인 지옥훈련을 했다. 그리고 8월 SK 김성근 감독이 보는 앞에서 테스트를 했다. 허 웅은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송구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당시 시험관이었던 부산고 선배인 김태균 코치는 "송구가 너무 좋다. 왜 잘렸노"라며 칭찬했다. 김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날 곧바로 짐을 싸서 SK 2군에 합류했다.

2010년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허 웅은 연습경기에 자주 기용됐다. 시범경기에서도 뛰었다. 하지만 1군의 벽은 너무 높았다. 결국 지난해에도 2군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깨가 아파 수영센터를 다니기도 했다. 흔들리려는 찰나, 지금의 여자친구 임두리새암씨(26)를 만났다. 다시 이를 악 물었다.

결국 어깨는 다 나았다. 시즌 전 오키나와 캠프는 합류하지 못했지만, 기량을 갈고 닦았다. 지난 28일 피트니스 센터에서 복근훈련을 하고 있던 허 웅은 '1군으로 합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옆에 있던 여자친구를 부둥켜 안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꿈에 그리던 1군 무대.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지난 30일 대전 한화전 6회에 교체출전했다. 너무나 경직된 나머지, 옆에 있던 세리자와 배터리 코치는 "힘빼, 힘빼"라고 연신 주문했다.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화 가르시아의 타석. 2-0에서 투수 박희수의 볼이 바깥으로 빠졌다. 그러나 허 웅은 투수에게 기를 불어넣기 위해 "나이스 볼"이라고 크게 외쳤다. 그러자 가르시아는 즉각 "셧 업"이라고 했다. 그러자 허 웅은 "쏘리. 아임 마이너. 퍼스트 타임 메이저"라고 했다. 그러자 사정을 깨달은 가르시아는 "리얼리. 오케이"라고 웃기도 했단다.

10년 만에 꿈을 이룬 허 웅의 파란만장한 1군 데뷔무대는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그의 야구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대전=류동혁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