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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트레비스 블랙클리(29)와 LG 벤자민 주키치(29)는 성공적으로 한국야구에 연착륙하고 있는 효자 용병 투수들.
두 선수의 한국 적응 과정은 공교롭게도 참 많이 닮아 있다. 빠른 볼과 다양한 구종의 변화구를 갖춘 왼손의 동갑내기 투수라는 외형적 공통점만이 아니다.
보크성 동작 극복기
보크는 올시즌 유독 화제를 모았던 야구 규칙이다. 오릭스 박찬호를 비롯, LG 임찬규와 최근 넥센 김성태의 퀵피치, 롯데 임경완 등 무수한 논란이 야기됐다. 그 중심에 트레비스와 주키치가 있다. 두 선수는 똑같이 1루 견제 동작을 지적받았다. '견제시 자유발이 베이스를 향해 똑바로 내딛어야 한다'는 규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1루 견제시 '베이스 방향'의 기준은 통상 45도로 판정한다. 1루와 홈을 보이지 않는 45도 각도의 선으로 반분해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주키치는 3개의 보크를, 트레비스는 2개의 보크를 지적받았다. 주키치가 지난 4월21일 인천 SK전에서 범한 2개의 보크 중 하나는 박찬호의 케이스와 같이 정지동작 위반이었다.
야구규칙 8.05조의 보크 규정은 실로 다양하다. 보크가 되는 경우가 다양하고 특정 동작이 보크의 경계선상을 넘느냐에 대한 판단은 현장 심판의 몫이다. 그러다보니 국내 심판 사이에서조차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물며 미국, 일본 등 다른 리그와도 그 기준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박찬호와 트레비스, 주키치 등 '이방인'들이 적응 과정에서 애를 먹은 이유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국내 무대 연착륙을 위해 용병들도 당연히 적응해야 할 숙제다. 다행히 두 선수는 순조롭게 견제 동작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
지독히 따르지 않는 승운
트레비스는 18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11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같은팀 윤석민의 12차례에 이어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6일 현재 7승4패 방어율 3.00. 주키치는 19차례 선발 등판에서 9번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했다. 하지만 성적은 5승4패(방어율 3.43)에 그쳤다.
두 선수는 최근 승운이 없는 용병 투수로 공통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키치의 마지막 승리는 6월7일 잠실 한화전으로 까마득하게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6월17일 잠실 SK전부터 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지만 타선지원 부족과 불펜의 3연속 블론세이브 속에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이 3경기에서 주키치는 23⅔이닝 동안 단 3실점(2자책)하는 눈부신 호투를 펼친 바 있다. 6월17일 SK전에서는 4-1리드를 9회 임찬규의 연속 볼넷 속에 역전패했다. 6월28일 잠실 삼성전에서도 3-2 리드를 9회 불펜이 지키지 못하고 연장 10회에 역전패했다. 심지어 7월5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8이닝 무실점으로 1-0 리드를 불펜에 넘겼으나 역시 9회 동점, 12회 역전으로 날렸다. 주키치의 불운이 본격적으로 화제가 된 시점이다.
트레비스도 7월 들어 4차례 등판에서 잇단 호투에 불구, 단 한번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26일 광주 삼성전을 포함, 최근 3경기를 모두 불펜의 블론세이브로 날렸다. 특히 지난 19일 대전 한화전은 주키치의 6월17일 한화전 역전패만큼 충격적인 악몽이었다. 7이닝 7안타 2실점으로 6-2 리드를 불펜에 넘겨줬으나 9회 최진행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아 6대7로 역전패했다.
승운이 너무 따르지 않고 투수가 이를 의식한 피칭을 하다보면 부지불식간에 투구 밸런스에 좋지 못한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벤치의 우려 섞인 시선도 바로 이 부분이다.
마운드 위, 아래가 다른 두 얼굴의 사나이
두 선수는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헐크' 같은 파이터로 변신한다. 그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하다. 이 때문에 가끔씩 판정을 놓고 심판과 아슬아슬한 갈등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운드를 내려오는 순간 두 선수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젠틀맨으로 변신한다. 주키치는 예의 바른 모습으로 선수단과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 평판이 좋다. 트레비스 역시 늘 밝은 모습으로 타인과의 대화를 즐기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다. 두 선수는 종종 경기 후 갈등을 빚은 심판위원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곤 한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승부근성이 강한 탓에 빚어지는 부작용인 셈이다. 심판 판정을 존중하고 정도를 지키는 행동 규율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마운드 아래서 이들과 대화를 나누면 '한국 야구를 무시해서?'라는 오해는 어느정도 사라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광주=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