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가 끝나면 또다른 야구가 시작된다. '야(野)밤의 세 여신'이 나설 시간이다.
매일 밤, 프로야구 팬들은 판타지 세계로 초대된다. 케이블방송 3사(KBS N 스포츠, MBC 스포츠+, SBS ESPN)가 저마다 야심차게 내세운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이끄는 아리따운 여성 아나운서들이 팬들의 눈과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스포츠조선은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아 이른 바 '야구 3대여신'으로 불리는 김민아(MBC 스포츠+), 최 희(KBS N 스포츠), 배지현(SBS ESPN)아나운서를 한 자리에 초대해 방송에서 듣지 못한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셋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어려운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신 점 고맙습니다. 팬들의 많은 사랑 속에 프로야구 전반기가 마감됐네요. 여러분들은 전반기를 어떻게 돌아보시나요.
-김민아(이하 김) : 음~ 프로야구의 인기가 이전에 비해 정말 많아졌다는 것을 느낀 전반기였네요.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 일로 인해 프로그램을 홀로 지켜나가는 게 가장 힘들었고요. (표정을 밝게 고치며)후반기에는 더 힘 내서 해야죠!
-배지현(이하 배) : 저는 여러모로 '처음'이라는 게 가장 부담스러웠어요. 프로그램 진행도 처음이고, 야구에 대해서도 전문가적인 지식이 없어서 부담됐어요.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하려고 달려오다보니 전반기가 끝났네요.(웃음). 달려오는데 급급했는데, 후반기에는 더 재미와 즐거움을 스스로 느끼고 싶네요.
-최 희(이하 최) : 아쉬움이 많이 남는 전반기였어요. 재밌는 일도 많았고요. 전반기를 통해서 태도나 마음가짐, 가치관 같은 내면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내려놓게 됐다'고 할까요.(호호) 여유가 생긴거죠.
◇최 아나운서가 말한 마음의 변화는 '방송 중 해프닝'과도 관련이 있나요.
-최 : (끄덕끄덕) 여러 일이 있었는데, 우선 벨트 장식이 떨어진 일은 사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게 희화화되는 것 같아서 속상했어요. '콧물사건'은 사실 그냥 웃고 넘겼죠. 그런데 마지막에 방송 중에 웃음이 터진 일 때문에 결국 '방송사고 3관왕'이라는 말까지 들었거든요. 솔직히 충격이었죠. 어떤 분은 쪽지로 직업관에 대한 질책까지 하시더라고요. '이게 그렇게 심각한 일인가'하고 무서워졌죠. 그런데, 그런 반응에 일희일비하다 보면 오래 못가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거 같아요.
(팬들의 날카로운 반응에 상처를 입었다는 대목에서 김민아 배지현 아나운서도 크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수많은 경기에서 늘 스타플레이어가 나옵니다. 세 분이 생각하는 전반기 최고 스타는 누구죠?
-배 : 저는 LG 이병규 선수요. 처음 야구장에서 만났을 때 뭐랄까. 좀 설렁설렁하는 이미지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그 연차에도 한참 어린 후배들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건 그 만큼 열심히 하기 때문일 거에요.
-최 : KIA 윤석민 선수는 저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다들 베스트 플레이어로 손꼽아요. 성적이 증명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에 못지 않게 삼성 오승환 선수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마무리라는 게 정신적 피로감이 엄청난 포지션이잖아요. 제가 투수라면 절대 마무리 못할 것 같아요.
-김 : 저는 KIA 윤석민과 이용규 선수를 최고 스타로 뽑고 싶어요. 투타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내면서 팀을 1위로 이끌잖아요.
|
◇'야구 여신'으로 부르는 팬이 많아요. 언제 유명해졌는지 느끼나요?
(이 질문에 대해 최 희, 배지현 아나운서는 '저희 별로 그런 거 못느껴요'라며 공감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자 가장 경력이 많은 김민아 아나운서가 이들을 대변했다.)
-김 : 우리가 유명해졌다고 하나요?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화려해 보여도 속상하고 힘든 일도 정말 많고요. 야구팬들이야 저희를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훨씬 더 많을 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김민아 배지현 최 희는 전문용어다'라고요. 전문용어는 그쪽 계통사람들만 알잖아요. 저희도 야구팬들만 아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위기의식도 느끼고, 더 잘해야지라고 다짐하게 돼요.
◇직접적으로 묻죠. 혈기왕성한 야구선수들과 자주 접합니다. 개인적인 관심을 보이기도 할텐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배 : 저는 경력이 짧아서 별로 만날 기회가 없어요. 야구장도 다섯 번 밖에 안나갔는 걸요. 근데 저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뿌듯하긴 할 거 같아요.
-최 : 아직 겁이 나요. 경계심도 많이 들고요. 안 좋게 비치거나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봐요.
-김 : 어쩌면 저희가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 야구선수들일 거에요. 심지어 가족보다, 혹은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유재석 씨보다 선수를 더 많이 보기도 해요. 그래서 더 경계심을 갖게 되는거 같아요. 선수들도 때로는 저희들에 대해서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요. 어느 정도 선은 그어야 되는 것 같아요.
소모품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ㅠㅠ. 그냥 현재를 즐기야죠.
◇화려한 모습으로만 비쳐집니다. 이 일을 하면서 힘든 점이 뭔가요.
-최 : 워낙 여러 사람들이 들고 나는 현장이잖아요. 때로는 제가 소모품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이게 제 삶이에요. 눈뜨면 야구 기사보고, 침이 마를 때까지 방송을 하고, 매일 야구를 보고 있어요. 그런 현실을 느끼면 너무 막막하죠. '내가 소모품이라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게 돼요.
-김 : 희도, 지현이도 지금 정말 예쁘잖아요. 다들 그 자리에 있을 때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들 우리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는 즐기지 못하고 있거든요. 야구 팬들은 우리를 마치 타율 비교하듯이 비교하잖아요.
-최 : 맞아요. 그리고 팬들이 좋아해 주시면서도 또 엄청나게 비난하기도 해요. 선수나 구단에 대한 열정을 저희에게 쏟아내시는 거죠. 조금만 잘못해도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비난하실 때 힘이 들죠.
-배 : 이미 선배님들이 만들어 놓은 방송에 대한 기준이 있어서 팬들은 눈이 높아지셨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그 수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악성 댓글들이 정말 많이 나오더라고요. 열에 하나라도 악성 댓글이 있으면 그것만 눈에 들어오면서 상처받기도 해요. 정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