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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 700만명을 바라보는 올시즌, 팬이 스타가 됐다. '팬의 스타화.' 2011 프로야구의 굵은 트렌드 중 하나다.
밤마다 TV중계 카메라는 포복절도 기발한 문구의 피켓은 기본, 가발과 소품까지 가세한 튀는 패션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하다. TV중계에서 경기만 보는 건 옛날 이야기다.
1년 내내 우리는 형제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3년전 잠실구장. 지금 그들의 무대가 된 응원석 그 자리였다. 전혀 인연이 없던 이들은 두산 베어스 열혈팬이라는 운명같은 공통점으로 금세 친해졌다. 그렇게 한두 시즌을 보낸 이들 사이에 조직적이고도 정규적인 응원전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공감대가 지난해 형성됐다.
자영업을 하는 '맏형' 윤씨는 "처음부터 이런 응원을 하자는 건 아니었어요. 따로 응원을 하다 한명씩 만났는데 그때만 해도 열정과 율동이 담긴 퍼포먼스 차원의 응원은 없었지요. 분위기도 아니었구요"라며 당시 분위기를 떠올렸다.
그런데 일어서서 하는 퍼포먼스 응원이 LG와 롯데 팬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윤씨는 "우리도 가만 있을 수 없었어요. 작년 4월말쯤 우리도 시작했지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다. 운동장 밖에서도 늘 붙어다닌다. 시즌 때는 경기 후 잠실 주변 선술집에서 오로지 야구, 아니 두산 이야기로만 밤을 지새운다. 비시즌 때도 거의 매일 얼굴을 본단다.
"비시즌에는 정말 괴로워요. 야구를 못보니까요. 만나도 온통 야구 얘기밖에 안해요." 둘째 이종열씨의 하소연이다.
샐러리맨인 막내 정씨는 "겨울에는 일주일에 4일 정도 만나는 것 같아요. 만나도 분위기는 우울해요. 야구를 안하니까요. 그래도 야구 얘기 밖에 안한답니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열혈남아'는 팬들이 붙여준 팀명이다. 원래 팀이름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이런저런 팀명이 붙여졌다. 그중 열혈남아가 선택됐다. 그동안 멤버 교체는 한번 있었다. 지난해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때 막내 정씨가 합류했다.
상업적 유혹? 그저 베어스만을 생각한다
이들의 인기는 멤버십을 신청하는 팬들이 수천에 달한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새 멤버를 영입할 생각은 전혀 없다. 윤씨는 "함께 하고 싶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수천명이라고 하면 과장될지 모르지만, 정말 많아요. 하지만 조직 성격의 대규모 클럽처럼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순수하게 우리 4명의 응원만으로 이어가고 싶어요. 너무 정확하게 잘 맞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들의 응원 출석률은 예상대로였다. 윤씨는 "작년 두산은 우천취소 경기까지 합치면 158경기를 했는데, 그중 122경기에 제가 출전했어요. 여기 동생들도 다 100경기 이상은 함께 응원을 했습니다"라고 자랑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가 높아지자 상업적 유혹도 늘었다고 한다. 이들을 광고에 쓰려는 업체들이 줄을 잇고 있단다. 그러나 윤씨는 "어떤 형식으로든 돈받고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게 직업이 돼 버리면 의미도 사라지고 우리들의 느낌도 반감될테니까요. 사업하시는 분들께서 광고모델로 나올 수 없냐고 제안을 하시는데 모두 거절하고 있어요. 술집에 가면 술값을 안받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고마운 일이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했다. 윤씨는 사업 목적의 연락이 너무 많아져 심지어 휴대폰 번호를 바꾸기도 했단다.
원정응원? 우리는 더 당당하다
이들의 응원 중에는 남성미 넘치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율동이 눈길을 끈다. 그런데 마치 오랜 시간 연습을 하고 나오는 것마냥 움직임이 딱딱 잘맞는다. 그러나 따로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치어리더들이 하는 것을 따라서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나름대로 즉석에서 동작을 만들어냈는데, 이상하게도 4명 모두 동작을 금방 익히는거예요. 한번은 '김현수송'에 맞춰 율동을 내가 만들었는데, 한 회가 끝나자 4명 모두 같은 동작을 맞춰 하는 거였어요. 참 신기했죠." 팀내에서 율동을 담당하는 이종열씨는 '즉석 안무'가 대부분임을 강조했다.
원정응원 때 분위기가 궁금했다. "감히 우리한테 단무지라도 던질 용기가 있는 분들이 있을까요?" 윤씨가 농담섞어 답을 했다.
윤씨는 "저희들 이미지를 보세요. 장정 4명이 한자리에 모여 응원한다는 자체도 힘든데, 우리가 또 다들 한 덩치 하지 않습니까. 부산이나 광주에 가도 어려움 없이 응원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음료수나 먹을 것을 주며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요"라고 했다. 오는 29일 사직구장 롯데전서는 다른 베어스 팬클럽과 함께 대규모 응원전도 준비하고 있단다.
베어스여 영원하라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물었더니, 재미있는 답을 내놓았다.
윤씨는 "승패에 관계없이 두산 선수들 뛰는 것을 보면 기분이 업되고 어마어마한 감동이 몰려옵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경기를 들자면 첫 시범경기가 아닐까 해요. 겨우내 야구를 못보다 야구를 처음 보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한국시리즈 못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정씨는 "저번 고영민이 KIA 차정민에게서 홈런을 친 광주경기(7월14일)가 기억나네요"라고 했다. 최근 극적으로 이긴 경기를 잊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일가. 단연 김동주다. 윤씨는 "베어스의 9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동주 선수가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은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중에 은퇴하면 찾아가서 소주 한잔 하자고는 할 수 있겠지요"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이들의 목소리는 정상이 아니었다. 이종열씨는 "지금 목소리는 제 것이 아니예요. 계속 소리를 지르니까 목이 쉰겁니다. 비시즌이 돼야 원래 제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윤씨도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당장 응원 중단하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전 '약이나 주세요' 그랬어요"라며 거들었다.
이들은 언제까지 지금처럼 두산을 응원할까. 윤씨는 이렇게 말했다.
"베어스가 존재할 때까지 해나갈 생각입니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