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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SK의 기동력. 폭풍같은 삼성의 복수혈전이었다.
SK는 가장 화려한 작전구사능력을 지녔다. 딱 부러지는 해결사는 없지만, 기민한 베이스러닝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작전구사로 점수를 짜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그런데 SK의 이런 주루 플레이에 '천적'같은 팀이 삼성이다. 지난해 페넌트레이스에서 다른 팀에는 압도적인 상대전적을 자랑했던 SK가 유독 삼성에게 10승9패로 5할 승률을 겨우 넘겼던 것은 이런 관계가 작용했다.
알고도 당한 SK의 시간차 더블 스틸
이전까지 '20이닝 무득점'의 달갑지 않은 기록을 가지고 있던 SK로서는 선취점이 너무나 중요했던 경기. 믿을 수 있는 에이스 글로버가 선발로 나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1회초 1사 만루의 황금찬스를 놓친 SK는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2회초 2사 1, 3루 상황. 타석에는 조동화. SK 김성근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1루 주자 박진만이 2루 스틸을 감행했다. 삼성 포수 진갑용이 2루에 송구함과 동시에 3루 주자 김강민이 홈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시간차 더블 스틸이었다. SK가 애용하는 주루 작전.
삼성은 SK의 이런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도 SK의 이런 작전을 무산시킨 경험이 많았다. 2루수 신명철은 2루 앞에서 포수 송구를 잡은 뒤 홈에 곧장 던지려 했다. 타이밍상 제대로 던졌다는 아웃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다. 진갑용의 송구를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고 뒤로 흘렸다. 김강민은 그새 홈을 밟아 SK는 21이닝 무득점의 굴욕에서 마침내 벗어났다.
삼성의 복수혈전
3회초 SK는 또 다시 찬스를 잡았다. 최 정과 박정권이 연속안타를 쳐 무사 1, 2루를 만들었다. 다음 수순은 당연히 희생번트.
정상호의 번트는 괜찮았다. 3루 파울라인 안쪽으로 붙어 적당한 거리를 굴렀다. 그런데 삼성의 수비는 과감했다. 삼성 내야진이 피땀 흘려 갈고닦은 필살기인 이른바 '100% 수비'였다.
보통 2루 주자를 3루에 갖다놓기 위해 상대가 희생번트를 할 경우 수비는 선행주자의 진루를 허용하고, 대신 아웃카운트를 늘리기 위해 1루주자를 잡는 안정적 플레이를 펼치게 된다. 그러나 100% 수비란 적극적으로 득점을 막기 위해 3루 주자를 아웃시키기 위한 수비 시프트를 말한다. 3루수와 1루수는 극단적인 전진수비를 하고, 유격수는 3루, 2루수는 1루 커버를 들어간다.
3루수 박석민의 센스가 뛰어났다. 정상호가 번트를 대기 전부터 득달같이 달려들어와 번트 타구를 잡고 3루에 주저없이 송구했다. 2루주자 박정권은 안간힘을 다해 뛰었지만, 아웃될 수밖에 없었다. 3루 커버를 들어간 유격수 김상수는 곧바로 1루에 송구, 정상호마저 아웃시켯다. 보기드문 희생번트 병살타. 박석민의 수비와 송구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나온 진기한 장면이었다.
SK 김성근 감독이 '1루 아웃'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회 SK의 주루 플레이에 당한 것을 두 배로 갚아준 삼성의 빛나는 수비였다. 대구=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