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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불펜으로 변신한 류현진은 '능구렁이'였다.
류현진은 5-0으로 앞서있던 9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박재홍을 상대했다. 한화 구단 전력분석팀의 투구 분석 자료에 따르면 초구로 주무기인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구속은 시속 124㎞였고, 스트라이크존의 바깥쪽 상단 꼭지점을 살짝 벗어나는 볼이었다. 하지만 박재홍은 방망이를 돌렸고, 파울이 됐다.
볼카운트 1-2로 전세가 역전되자 다시 주무기 체인지업으로 바깥쪽 높은 코스를 공략했으나 스윙을 유도하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위기로 몰린 상황이었다.
이 때부터 승부사 기질이 빛났다. 전혀 흔들림 없이 시속 141㎞짜리 바깥쪽 가운데 꽉 찬 직구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여유를 부렸다.
마지막 1구의 승부. 다시 체인지업을 바깥쪽 아래쪽으로 낮게 내리꽂더니 통렬한 헛스윙 삼진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날 류현진이 구사한 구질은 직구와 서클 체인지업 뿐이었다. 선발 등판 때는 커브, 슬라이더 등을 섞어 보통 4∼5가지 구질로 승부를 펼쳤다.
기교를 부리기보다 상대를 확실히 요리할 수 있는 공으로 단기간 승부를 벌어야 하는 마무리 투수 본연의 스타일을 잘 살렸다.
구속은 등근육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되기 직전인 지난달 28일 SK전에 선발 등판할 때에 비해 나아진 편이다. 당시 근육통을 안고 피칭을 했던 류현진은 직구 최고 145㎞를 찍기는 했으나 주로 130㎞대에서 맴돌았다. 체인지업도 대부분 110㎞대를 기록했다.
이에 비하면 이번 불펜 등판에서의 직구 최고 141㎞와 체인지업 126㎞는 다소 호전된 편이다. 하지만 컨디션이 절정일 때 나오는 최고구속(153㎞)에는 크게 못미친다.
이는 갑자기 전력투구를 했다가 탈이 날 것을 피하기 위해 그야말로 적응 연습 차원에서 스스로 강약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한대화 감독은 "순전히 감각을 익히려는 차원에서 올렸기 때문에 아직 평가할 단계는 안된다"면서도 "18일 만의 등판에서 첫 타자를 재치있게 요리한 것은 류현진 자신에게도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한 감독은 이번주 동안 류현진의 한계 투구수를 30개로 잡고 등판시킬 계획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