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브? 슬라이더? 리즈의 승리 이끈 '슬러브'

리즈는 12일 잠실 SK전에서 커브와 슬라이더의 중간형태를 띈 '슬러브'로 SK 타자들을 요리하고, 시즌 7승(7패)째를 거뒀다.
잠실=김경민 기자 [e-mail]

리즈의 알쏭달쏭한 변화구가 통했다.

LG 리즈는 12일 잠실 SK전에 선발 등판해 7⅓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시즌 7승(7패)째를 거뒀다. 이전과는 또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지난 7일 대전 한화전에서 최고 140㎞에 이르는 고속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요리했던 그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라이더의 구속을 낮춘 대신 낙폭을 키웠다. 리즈의 손을 떠난 공은 타자 앞에서 급격한 변화를 나타냈다. 슬라이더라고 보기엔 낙폭이 컸고, 커브라고 보기엔 빠른 이른바 '슬러브'였다.

본인은 커브라고 던지는데….

리즈는 변화구로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을 던져왔다. 사실 커브는 제대로 된 커브라고 보기 힘들었다. 떨어지는 각도 크지 않고, 공에 브레이킹도 잘 걸리지 않았다. 제구마저 완전치 않아 스트라이크존에서 멀리 벗어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리즈는 이러한 커브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제구가 신통치 않아 한동안 이 공을 던지지 않았지만, 2~3경기 전부터 다시 던지기 시작했다.

비밀은 여기 있었다. 새로 가다듬은 커브가 슬라이더와 구분이 힘든 것. 본인 역시 커브라고 던지고 있지만, 그립이나 공에 걸리는 회전 모두 슬라이더와 커브의 중간형태를 띄었다. 실제 투구분석 역시 120㎞대의 공은 커브로, 130㎞대의 공은 슬라이더로 구분했다.

양상문 MBC 스포츠+ 해설위원은 "사실 슬러브라는 구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손목 스냅을 크게 한다던지 해서 낙폭을 크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곧이어 "수준급의 투수라면 그 정도는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리즈가 자유자재로 공의 낙폭을 변화한 것일까. 본인은 커브라고 말하기에 이 공을 의식적으로 던졌다고는 보기 힘들다. 슬라이더에서 변형된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리즈

리즈는 이날 4회와 6회 박정권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이 공을 던졌다. 구속은 각각 134㎞와 136㎞였다. 양 위원은 이 공에 대해 "슬라이더다. 지난 경기에서 리즈의 슬라이더 구속이 높게 나온 것은 공이 높게 들어가면서 날카롭게 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어제는 공을 던질 때 손목에서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낙폭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리즈의 공을 본 LG 타자들은 '오늘 저 공이 긁힌다'고 말했다. '긁힌다'는 표현은 보통 공의 변화가 크고, 제구가 잘 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리즈는 경기 초반부터 이 공이 좋다고 느끼자, 유리한 카운트에서는 어김 없이 이 공을 던졌다. 이날 던진 106개의 공 중 69개가 직구와 투심패스트볼이었지만, 삼진을 잡은 공은 모두 커브 혹은 슬라이더였다.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체인지업의 비율은 확 낮췄다. 불필요한 구종이기에 점점 버리고 있는 모습이다.

리즈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를 시작한지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용병과 달리 한국야구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본인의 장단점을 냉철하게 파악해 조금씩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명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