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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리더십'의 실체는 무엇일까.
당시 야구인들은 삼성이 우승을 할만한 전력은 아니라는 의견을 보였다. 예상은 빗나갔다. 시즌 초반의 위태로움을 잘 견딘 삼성은 5월 중순 이후 힘을 내면서 마침내 1위에 올랐다. 특히 심판들이 많이 얘기한다. "류중일 감독에게서 초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상당히 침착하고 냉철하게 팀을 이끄는 게 눈에 보인다"는 얘기다.
선수가 미안하게 만든다
지난 주말 류중일 감독에게 질문했다. "감독 류중일을 스스로 평가하자면 어떤 스타일입니까?"
류 감독은 웃으며 "선수가 먼저 미안하게 만드는 게 내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라고 답했다. 이어진 자세한 설명이다.
"코치 시절부터 강제로 선수들을 닥달하지 않는 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수비 훈련을 시키는데 한눈에 딱 보기에도 선수가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를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너! 저쪽으로 빠져.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세게 얘기하는 편이 아니다. 그럴때 '너, 오늘 왠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 다음에 하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선수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아냐, 아냐. 오늘 하지 말자. 싫을 때 억지로 하면 다칠 수가 있어'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다음날 훈련하는 선수 자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를 "독한 스타일이 못 된다"고 말하는 류중일 감독이다. "선수들이나 후배 코치들에게 뭘 강요하는 성격이 못 된다. 하지만 알아서 제몫을 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늘 관찰한다"는 설명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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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류중일 감독은 몇몇 국제대회에서 코치를 맡았다. 2006년의 1회 WBC, 2009년의 2회 WBC, 그리고 지난해 말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표팀 코치로 참가했다.
대표팀에서 유명했던 일화가 있다. 2006년의 일이다. 당시 KIA 소속 김종국이 대표팀 멤버였다. 류 감독은 "하루는 종국이에게 수비 훈련을 시키는데 자꾸 공을 놓쳤다. 대구 사투리로 '떠겁나(뜨겁냐)'라고 웃으며 물어봤다. 공이 뜨거워서 놓치느냐는 얘기다. 종국이가 웃고, 그게 대표팀에서 유행어가 됐다. 1회 WBC를 마치고 나중에 경기장에서 종국이를 만났을 때 웃으면서 그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때 삼성 소속의 조동찬이 멤버로 합류했다. 훈련때 조동찬이 자꾸 실수를 했다. 류 감독은 "동찬이에게 '대체 너네 팀 수비코치가 누구냐'라고 큰 소리로 물었다. 바로 나잖아. 주위에서 웃으면서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이같은 농담이 당시 팀 분위기를 굉장히 밝게 하는 효과를 냈다.
독설의 시대다. TV에서도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독설가가 화제에 오르곤 한다. 하지만 온화한 유머는 여전히 힘을 내게 하는 부분이다. 류 감독의 신조다.
류중일 감독은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저마다 야구 잘 하는, 한가닥 하는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을 억지로 시킬 수가 있나. 농담으로 웃으면서 분위기를 밝게 하다보면, 내가 시키고픈 훈련량을 모두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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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2일, 당시 3루코치를 맡고 있던 류중일 감독이 2군으로 내려갔다.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선수로서 삼성에서만 13시즌을 뛴 류 감독은 부상이 아닌 부진으로 인해 2군에 간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99년말 지도자로 변신해 이듬해 6월 1군에 올라온 뒤 8년5개월 동안 오직 1군에만 있었다.
"대체 네가 왜 2군으로 가게 됐냐"면서 전화를 걸어오는 지인이 많았다고 한다. 류중일 감독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해줬다. 실제로 2군에 있을 때 야구 보는 눈이 넓어졌다. 당시 2군행은 지금의 감독 역할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원칙을 지키면서 좋은 건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최근 SK 최 정이 긴급상황에서 포수로 투입되는 걸 본 뒤, 류 감독은 박석민에게 잠시 포수 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배울만한 게 있으면 주저없다.
스스로 "나는 평소엔 말도 빠르고 촐랑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침착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경기중 수많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코치 조언을 귀담아듣는 건 그 덕분이다.
요즘은 덕아웃에서 경기중 표정관리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류 감독은 "그게 결정적인 순간엔 잘 안 돼서…. 이번에도(1일 롯데전) 모상기가 동점홈런 칠 때 나도 모르게 오른 주먹을 흔들었나 보더라고. 그건 쉽게 안 고쳐지네"라며 웃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