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를 위한 변명, 9회 역전 피홈런은 무죄?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1-06-03 11:54 | 최종수정 2011-06-03 11:54


스포츠조선

2011.06.02

넥센 송지만의 극적인 역전포가 터졌다. 송지만이 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 9회초 2사 주자 1루 롯데 강영식에게 좌익수 뒤로 넘어가는 역전 2점홈런을 쳐냈다. 홈런을 허용한 롯데 강영식이 허탈해하고 있다.

부산=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정재훈. 스포츠조선DB

9회 역전 드라마가 영웅을 탄생시키는 순간 고개를 떨구는 한 사람, 마운드 위 투수다.

2일 문학과 사직, 양 구장에서 영웅이 탄생했다. 문학에서는 SK 김연훈이 4-5로 뒤진 9회말 1사 2루에서 좌월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사직에서도 넥센 송지만이 8-9로 뒤진 2사 1루에서 풀카우트 승부 끝에 왼쪽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보기 드문 9회 역전 홈런이 무려 두군데서 터져나왔다.

모든 시선이 영웅에게 맞춰지는 순간, 마운드 위 두산 정재훈과 롯데 강영식의 시선은 아래를 향했다. 영웅을 위한 인터뷰 무대가 마련되는 동안 두 투수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불펜에서 굳은 일을 해내는 두 투수는 단 하나의 실투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든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역전 드라마가 만드는 커다란 그림자 속에 묻힌 투수들. 그들을 위한 변명이 필요하다.

신 무기 장착한 타자들, 던질 곳이 없다

골프 클럽은 기술 개발과 함께 끊임 없이 발전한다. 공식대회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골퍼에게 유리한 클럽도 속속 탄생할 정도다. 도구의 발전. 자신과의 싸움인 골프와 달리 상대가 있는 게임인 야구는 자칫 심각한 불균형을 낳는다.

야구는 도구의 운동이다. 도구의 핵심은 배트다. 이 역시 끊임 없이 진화한다. KBO가 정한 허용 기준이란 테두리 안에서 타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과거 반발력이 좋은 '압축배트' 금지 논란도 타자와 투수의 지나친 불균형에 대한 우려에서 나왔다. 여기에 배트를 다루는 타자들은 유행처럼 번지는 '지옥훈련'을 거치며 해가 다르게 배트 스피드를 늘려가고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기른데다, '지옥 훈련'으로 스피드까지 빨라지고, 도구마저 짱짱하니 투수들은 곤혹스럽다. 박빙의 승부 속 9회 역전 찬스. 타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집중한다. 일단 '스위트 스팟'이라 불리는 배트 중심에 맞히면 홈런이 될 확률이 무척 높아졌다. 과거 한 팀에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는 한정된 몇명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1번부터 9번까지 홈런을 칠 수 없는 타자는 단 1명도 없다. 김연훈의 끝내기 홈런은 데뷔 5년만의 통산 두번째 홈런이었다. 9회, 상대 타자의 '홈런 가능성'을 의식하느냐 아니냐는 투수의 볼 배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던질 공이 없다"고 호소하는 마무리 투수들에게 볼넷은 더 큰 재앙의 출발이다. 큰 숨 한번 들이쉬고 던지는 외엔 탈출구가 없다.

타자가 칠 수 없는 '마구'는 없다


타자들의 도구 발전 속에 투수들의 발전은 꽤나 한정적이다.

투수의 무기는 크게 세가지. 스피드, 로케이션, 그리고 변화다. 과거에 비해 투수들도 체계화된 웨이트 트레이닝과 과학적 관리를 통해 스피드와 볼끝을 늘렸다. 포크볼 등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방향성의 변화구 구종도 대폭 늘렸다.

하지만 이 모든 발전은 인간의 노력 범주 내에 있다. 손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투수의 스피드에 맞춰 빨라지는 배트 스피드와 타자들의 변화구 적응력은 덩달아 진화한다. 여기에 '도구'인 배트의 발전이 불균형을 초리한다. 투수가 던지는 변화구 중 '마구'는 없다. 칠 수 없는 변화구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가장 자신있게 구사할 수 있는 변화구가 오히려 '마구'에 가깝다.

시즌 초 변형 포크볼을 장착한 뒤 농담 삼아 "마구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던 KIA 윤석민은 최근 "내 마구는 슬라이더"라며 웃었다.

마무리 투수는 더하다. 대부분 마무리 투수는 구종이 다양하지 않다. 단순한 투피치, 쓰리피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결정적 변화구' 또는 '제구력+결정적 변화구', 둘 중 하나다. 공 하나 하나가 종반 승부에 직결되는 클로저로선 가지고 있는 제2의 변화구를 선뜻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실투=장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결국 반반의 확률을 머리 속에 넣고 타석에서 집중하는 타자들과의 승부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송지만은 풀카운트에서 강영식의 137km 슬라이더를 쳤다. 김연훈은 볼카운트 0-1에서 '포크볼러' 정재훈의 139km짜리 몸쪽 직구를 노려 담장을 넘겼다.

KIA 조범현 감독은 지난 4월 서재응을 임시 클로저로 발탁하면서 "볼이 빠른 투수보다 정교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를 갖춘 투수가 마무리로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오승환이나 손승락 등 그야말로 직구 볼끝 위력만으로도 타자의 배트 스피드와 발달된 도구를 이겨낼 수 있는 특급 마무리가 아닌 한 마무리 투수의 수난은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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