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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역전 드라마가 영웅을 탄생시키는 순간 고개를 떨구는 한 사람, 마운드 위 투수다.
모든 시선이 영웅에게 맞춰지는 순간, 마운드 위 두산 정재훈과 롯데 강영식의 시선은 아래를 향했다. 영웅을 위한 인터뷰 무대가 마련되는 동안 두 투수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불펜에서 굳은 일을 해내는 두 투수는 단 하나의 실투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든 비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역전 드라마가 만드는 커다란 그림자 속에 묻힌 투수들. 그들을 위한 변명이 필요하다.
신 무기 장착한 타자들, 던질 곳이 없다
골프 클럽은 기술 개발과 함께 끊임 없이 발전한다. 공식대회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골퍼에게 유리한 클럽도 속속 탄생할 정도다. 도구의 발전. 자신과의 싸움인 골프와 달리 상대가 있는 게임인 야구는 자칫 심각한 불균형을 낳는다.
"던질 공이 없다"고 호소하는 마무리 투수들에게 볼넷은 더 큰 재앙의 출발이다. 큰 숨 한번 들이쉬고 던지는 외엔 탈출구가 없다.
타자가 칠 수 없는 '마구'는 없다
타자들의 도구 발전 속에 투수들의 발전은 꽤나 한정적이다.
투수의 무기는 크게 세가지. 스피드, 로케이션, 그리고 변화다. 과거에 비해 투수들도 체계화된 웨이트 트레이닝과 과학적 관리를 통해 스피드와 볼끝을 늘렸다. 포크볼 등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방향성의 변화구 구종도 대폭 늘렸다.
하지만 이 모든 발전은 인간의 노력 범주 내에 있다. 손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투수의 스피드에 맞춰 빨라지는 배트 스피드와 타자들의 변화구 적응력은 덩달아 진화한다. 여기에 '도구'인 배트의 발전이 불균형을 초리한다. 투수가 던지는 변화구 중 '마구'는 없다. 칠 수 없는 변화구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가장 자신있게 구사할 수 있는 변화구가 오히려 '마구'에 가깝다.
시즌 초 변형 포크볼을 장착한 뒤 농담 삼아 "마구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말했던 KIA 윤석민은 최근 "내 마구는 슬라이더"라며 웃었다.
마무리 투수는 더하다. 대부분 마무리 투수는 구종이 다양하지 않다. 단순한 투피치, 쓰리피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결정적 변화구' 또는 '제구력+결정적 변화구', 둘 중 하나다. 공 하나 하나가 종반 승부에 직결되는 클로저로선 가지고 있는 제2의 변화구를 선뜻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실투=장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결국 반반의 확률을 머리 속에 넣고 타석에서 집중하는 타자들과의 승부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송지만은 풀카운트에서 강영식의 137km 슬라이더를 쳤다. 김연훈은 볼카운트 0-1에서 '포크볼러' 정재훈의 139km짜리 몸쪽 직구를 노려 담장을 넘겼다.
KIA 조범현 감독은 지난 4월 서재응을 임시 클로저로 발탁하면서 "볼이 빠른 투수보다 정교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를 갖춘 투수가 마무리로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오승환이나 손승락 등 그야말로 직구 볼끝 위력만으로도 타자의 배트 스피드와 발달된 도구를 이겨낼 수 있는 특급 마무리가 아닌 한 마무리 투수의 수난은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