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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정전, 안지만 "야구장 무너지는 줄 알았다"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04-17 14:02


2011 프로야구 삼성과 두산의 경기가 16일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렸다. 8회초 정전으로 경기가 중단되자 삼성선수들이 망연자실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대구=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대구구장 정전 사태를 겪은 현장 선수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16일 밤 삼성-두산전이 진행중이던 8회초에 대구구장이 암흑 세상이 됐다. 결국 노후한 시설이 문제였는데, 솔직히 기자실에 앉아있으면서도 컴컴해진 그라운드가 다소 공포스럽게 느껴진 측면이 있었다. 대형 콘서트장의 암전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겠지만, 늘 밝아야하는 야구장의 정전은 어색하고 불안해보였다.

불이 꺼지는 그 순간, 삼성 투수 안지만은 라커룸에서 쉬고 있었다. 물론 라커룸도 불이 완전히 나갔다. 안지만은 "앉아서 TV 보다가 갑자기 깜깜해졌다. 야구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차)우찬아, 도망가!'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걷다가 탁자에 허벅지를 퍽퍽 부딪혔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실제 그 순간에는 꽤나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외야수 이영욱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걸까 했다. 사고? 운동장이 무너지나? 그런 생각이었다. 불이 다시 들어오다가 또 꺼지고 하길래 불안했다"고 말했다. 정현욱은 "불펜서 팔 풀고 있었는데, 그냥 '어?' 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내야수 강명구는 "뭐지? 아, 이 망할 야구장"이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고 한다.

김한수 코치는 "혹시나 야구장이 무너질려고 해서, 그 조짐으로 먼저 불이 꺼진게 아닌가 했다"면서 웃었다. 김재걸 코치는 "야구장이 이래서야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투수 윤성환은 "순간적으로 전쟁? 무너지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다. 또다른 투수 이우선은 "처음엔 놀랐는데 곧이어 (사실상 내야안타를 내준 상태인) 현준이가 운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노플레이가 된 정수빈의 기습번트는 타이밍상 세이프가 확실시됐다. 그때 마운드에 왼손투수 임현준이 있었다.

삼성 송삼봉 단장은 "가슴이 철렁했다. 원인 파악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회열 배터리코치는 "다른 것 보다, 경기가 그대로 끝날 지 아니면 다음날로 넘어가는 지부터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외국인타자 라이언 가코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가코의 통역을 맡고 있는 이충무 과장은 "가코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가코가 미국에서도 조명탑 한쪽의 전기가 나가는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는 경기가 그냥 진행됐다고 했다.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이 담담했다"고 말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차분했다. 류 감독은 "기억해보면 이런 경험이 있었다. 예전에 이정훈이 우리 팀에서 뛸 때 그랬다. 이정훈이 타구를 잡다가 놓쳤는데 그 순간 불이 퍽 꺼졌다. 처음이 아니라서 나는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물론 전기 문제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 야구장 건설이 빨리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6일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된 뒤 대구시 행정부시장이 기자실로 찾아와 상황을 해명하기도 했다. 김연수 부시장은 "2014년 완공 예정인 새 야구장 건립이 빨라져야할 것 같다. 야구장 뿐만이 아니라 대구 스타디움까지 이참에 완전히 새로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7일 경기를 포함해 당분간 대구구장의 5번 조명탑은 비상발전기를 통해 가동된다.

삼성은 최근 새 야구장과 관련해 5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대구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난 10여년간 대구의 새 야구장과 관련해 온갖 루머가 있었지만, 삼성이 실질적으로 건설비 일부를 부담하겠다고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의미가 큰 행보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제도상의 규제를 하나씩 풀어가려면 시일이 꽤 걸릴 것이라고 삼성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번 정전 사건을 계기로 쓸데없이 발목을 잡는 규정들부터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대구=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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