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 둔 신도들 사정 이용해 금전 요구…"범행 수법 악질"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불치병에 걸린 신도와 그 가족을 말끔히 낫게 해주겠다며 거액의 헌금을 받아 챙긴 종교인이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형사6단독(김서영 판사)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A(71)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14년부터 약 10년간 기도 모임을 주최하면서 알게 된 신도 14명에게 '너와 가족의 아픈 곳을 치료해주겠다'며 16억7천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나는 하늘과 닿아 있는 특별한 영적 존재"라면서 돈을 내면 앓고 있는 병이 금세 낫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신도들을 속였다.
A씨는 때론 '네가 죄를 지어서 가족이 아프고 안 좋은 일이 생기니 속죄해야 한다', '속죄하지 않으면 자손에게까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위협하며, 신도들에게 '속죄 예물'을 내라고 강요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자신을 신격화한 A씨의 범행을 알아채고는 지난해 4월 교구장 명의의 교령 공포를 통해 '해당 신자를 교회법에 따라 파문한다'고 밝혔다.
파문은 교회법이 정한 가장 무거운 벌로 모든 교회 공동체에서 배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A씨는 법정에 선 이후에도 "함께 기도한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현금을 봉헌한 것"이라며 아픈 가족을 둔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육성이 담긴 녹취와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서영 판사는 "피고인은 가족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궁박한 사정과 그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들에게 현재의 어려움이 더 악화한다거나 대물림된다는 무시하기 어려운 해악을 고지해 거액을 편취했으므로 그 범행 수법이 매우 악질적이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재산상 손해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피고인은 피해자들이 자신에게 위안을 얻어 돈을 교부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피고인이 아무런 피해복구 노력을 하지 않았고,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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