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 국민의힘 최고위원(비상대책위원·비례대표)의 '어항을 깨고, 바다로 간다' 출판기념회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어항을 깨고 바다로 간다'는 책 제목은 '김예지'라는 이름 세 글자를 전국민에게 알렸던 작년 6월 14일 국회 대정부 질문 발언에서 유래했다. 당시 김 의원은 장애인을 포함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상황을 '코이'라는 물고기에 비유했다.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그리고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고기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 그리고 성장을 가로막는 어항과 수족관이 있습니다. 이런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국민이 기회의 균등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강물이 돼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저 또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분들을 대변하는 공복으로서 모든 국민이 당당한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명연설에 동료 여야 국회의원들이 기립박수로 화답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회자되며 국민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겼다.
200석 규모의 객석은 김 의원을 한결같이 지지해온 장애인, 예술·문화, 체육인들로 행사 시작 전부터 인산인해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 김승수, 이종성 의원 등 같은 당 인사들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최혜영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이은주 의원, 이 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여의도 동료들이 함께 했다.
▶어항을 깨고 함께 바다로
안내견 '조이'와 함께 연단에 오른 김 의원은 오른발에 두터운 깁스를 한 채였다. 책에 직접 쓴 '부딪힘의 릴레이'라는 소제목처럼 가구 모서리에 발을 부딪쳐 실금이 갔다. 그녀는 '내가 세상과 부딪치는 걸 왜 이렇게 두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도 무언가와 끊임없이 부딪치는 현실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며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수없는 넘어짐과 부딪침 속에 그녀는 누구보다 단단해졌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21대 300명 국회의원 중 가장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고 인격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제일 훌륭한 의원이 누군지 한 명을 적어내라면 나는 김예지 의원을 적어낼 것"이라고 했다. "당대표가 아니라서 말씀드리긴 곤란하지만 제게 권한이 있다면 22대 때도 꼭 모시고 함께 일하고 싶다"며 아낌없는 애정을 표했다. "항상 도전하고 행동하는 김 의원의 앞날에 드디어 어항이 깨지고 바다가 멀지 않았다"며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코이의 법칙' 명연설 전문을 인용한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이 책은 김 의원의 항해기이자 우리의 항해기다. '국민의 힘'이 그녀의 항해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순풍이 돼야 한다. 그녀의 항해가 '북극성' '나침반'이 되길 희망한다"며 지지의 뜻을 표했다.
'김 의원의 은사' 이혜전 숙명여대 교수의 축사는 뭉클했다. "음악대학은 매학기 실기시험을 본다. 예지는 점자악보를 완벽하게 외운 후 보이지 않는 건반을 쳐야 한다. 비장애인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될 뿐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게다가 모든 음들이 손가락의 가동범위 안에 있으면 좋겠지만 건반에서 도약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예지가 연주할 때마다 가슴이 오그라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 친구의 연주는 잘 친다는 말을 넘어서 '어떻게 저걸 해내지' 하는 경이로움과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대견하고 안쓰럽기까지 해서 심사 중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면서 "과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생각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 교수는 "김 의원이 비상한 머리를 가진 걸 알게 된 사건도 있다. '피아노문헌'이라는 과목 시험이었는데 저도 유학가기 전 7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 갔던 내용을 이 친구는 외우는 게 아니라 전후를 다 이해해서 전체를 꿰뚫어보는 논리적 통찰력을 지녔더라"고 소개했다. "어항에 있던 물고기는 어항은 벌써 깨고 나왔다. 강에 있어야 할 물고기가 거침없이 바다로 들어간다. 금붕어가 고래가 됐다"고 평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하지 않는 세상, 편가르지 않는 세상, 서로에게 따뜻하게 다가설 수 있는 세상이 김예지 의원을 통해 실현되리라 확신한다"는 은사의 찬사에 갈채가 쏟아졌다.
▶그녀의 항해기, 모두의 항해기
어항을 깨고 바다로 가는 과정에서 함께한 사람들, 수없이 부딪친 장벽이 그녀의 오늘을 만들었다. 간호사였던 어머니 대신 김 의원의 양육자를 자청했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할머니는 '장애가 있으니 할 수 없다'는 말 대신 성과를 강조했다. '다른 애들 열 장 읽을 때 너는 한 장 읽는데 같은 시간에 10분의 1밖에 못배우는 거야, 그럼 어떡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열배는 더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기계처럼 소리 높여 대답했다던 김 의원의 치열한 어린 시절 이야기,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식당, 부동산에서 '안내견' 조이와 함께 쫓겨나고, 청와대, 국회, 예술의전당에서 출입을 거부 당한 후 싸우고 승리한 이야기, '열혈' 할머니 손에 이끌려 종로에서 고덕동을 오가며 수영을 시작해 마라톤, 사이클, 스키, 사격,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하고 사랑하게 된 이야기, 마라톤 중 넘어져 레깅스가 찢어지고 다리에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끝까지 완주한 이야기는 여운이 오래 남는다.
2년 연속 장애-비장애학생 모두의 '서울림운동회'에 동행한 김 의원은 책에서 학교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내가 공부했던 미국은 애초에 장애-비장애인을 '분리'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미국 장애학생의 90%는 일반학급에서 일부 또는 전체 수업을 듣는다"면서 "학교에서 분리가 시작되면 결국 전생애주기에 걸쳐 분리와 차단과 배제가 일어난다. 특수학교가 필요한 지점도 있고, 장애유형별 학교의 장점도 잘 살려가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애-비장애인이 어울리는 쪽으로 우리 교육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은 "이 책은 저의 항해기이고 우리 모두의 항해기"라면서 "우리 주변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를 가로막는 어항과 수족관이 있다. 저도 아직까지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있다"면서 "여러분과 함께 어항을 깨뜨리기 위해 정부와 저, 정치하는 모든 분들이 여러분들의 강물과 바다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의정활동을 했고,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여러분과 함께 계속할 것"이라면서 국회에서의 항해를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우리 마음 속엔 각자의 어항과 수족관이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항을 깨달라. 저는 여러분의 강물과 바다를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하며 여러분의 힘이 되기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의원은 지난 4년간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장애인과 문화, 체육이라는 비례대표의 정체성에 집중했고 열심히 일했다. 지난 4년간 대표발의한 법안만 169건. 300명의 의원 중 7번째로 많은 법안을 발의했고 이중 37건이 통과됐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에 점자나 음성변환용 코드 표시가 의무화됐고 키오스크 이용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편의와 접근성을 누릴 수 있게 됐고, 점자 선거공보물의 페이지 제한이 사라졌고,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야구 직관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날 현장의 장애인, 문화·예술·체육인들이 한마음으로 김 의원의 '바다'를 다시 한번 열망한 이유다. 그녀가 지난 4년 그곳에 있었던 덕분에 이들의 삶이 나아졌고, 대한민국이 좋아졌으며, 모두가 함께 어항을 깨고 바다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