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조용한 가족. 과거 개그 프로에 침묵을 깨고 '밥 묵자'라고 말하던 코너가 있었다.
지난달 27일 수원에서 박정현(21·한화 내야수) 박영현(19·KT 투수)의 형제 투타 맞대결이 펼쳐진 다음날.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자리를 가졌다. 그 날, 그 시간 만큼은 '조용한 가족'이었다.
박정현 박영현 형제의 부모님. 그날 만큼은 어떤 결과에도 크게 웃을 수 없는 '우산장사, 짚신장사'를 아들로 둔 부모였다.
"부모님이요? 식사 자리에서 별 말씀을 안 하시던데요.(웃음)"
형 박정현의 이야기. 하지만 동생은 사뭇 달랐다. 형에게 할 말이 무척 많은 듯 했다.
"(대결 후에) 전화했는데 저한테 왜 봐주냐고 따지더라고요. 그리고 2구째(가운데 140㎞ 패스트볼)는 왜 안 쳤냐고도 했고요."
4-0으로 앞선 한화의 9회초 마지막 공격. 동생 박영현이 등판했다.
2사 1,2루에서 형 박정현이 타석에 섰다. 드디어 프로 1군 무대에서의 역사적 첫 맞대결이 성사되는 순간.
초구 127㎞ 슬라이더가 바깥쪽으로 빠졌다. 2구째 140㎞ 빠른 공이 한 가운데 들어왔다. 그대로 지켜본 형은 동생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공에 힘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동생이 3구째 조금 더 빠른 143㎞ 패스트볼을 또 하나 찔러넣었다. "바깥쪽으로 빠졌다고 생각했다"던 볼이었지만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1B2S. 중계진은 유인구 승부를 예상했다.
하지만 동생의 판단은 달랐다. 속전속결 승부. 이번에는 바깥쪽 높은 142㎞ 빠른 공이었다. 형 박정현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이닝을 마친 동생은 무덤덤 하고 시크한 표정으로 모자를 벗은 채 덕아웃으로 향했다.
프로통산 4번 째 형제 간 투타 맞대결. 동생 투수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U-23 대표팀 당시 U-18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번트와 뜬공으로 동생으로부터 안타를 치지 못한 형. 프로 선배로서 매운 맛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첫 만남에서는 실패로 끝났다.
사실 형 박정현으로선 불리한 상황이었다. 온전히 형제 맞대결에만 집중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9회 동생 박영현이 마운드에 서는 순간 한화 덕아웃은 이미 소란스러워졌다.
"9회 초에 다 저를 보고 웃으면서 동생한테 왜 저기(마운드에) 서 있냐고, 제가 타석에 나가니까 다 웃고 있더라고요. 재미 있었어요. 다음에는 꼭 (동생한테) 홈런 하나 쳐야죠."
형이 평가하는 동생의 구위. 과연 어땠을까.
"프로 1군에서 붙으니까 좀 다르더라고요. 변화구는 그날 하나만 봐서 잘 모르겠고 솔직히 직구는 좋은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직구는 워낙 좋았어요. 낮은 거는 몰라도 높은 직구는 참 좋더라고요."
'부천북초-부천중-유신고' 어릴 적부터 늘 같은 학교에서 2년 터울로 함께 야구를 해온 박정현-박영현 형제. 동생이 1차지명으로 우승팀 KT에 입단한 올시즌 부터 형도 3년 만에 5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이자 깜짝 파워와 스피드를 두루 갖춘 유망주. 화려한 내야진을 보유한 한화에서도 그는 꾸준한 출전을 보장받는 선수다. 5월 마지막 5경기에서 무려 11안타를 몰아쳤다. 3안타 경기만 무려 3경기였다. "스윙궤도를 짧게 바꾼 이후 부터 정타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설명. 공-수-주를 두루 갖춘 가치있는 만능 내야수. 벤치로선 쓰임새가 다양해 1군에서 선뜻 빼기 힘든 귀한 자원이다.
슈퍼루키 동생도 불펜에서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개막엔트리에 들었던 루키 박영현은 4월 말 부터 5월 중순까지 2군에 다녀온 뒤 포텐을 터트리고 있다. 최근 4경기에서 4이닝 1안타 4탈삼진 무실점 행진 중이다. 2일 SSG전에서는 1이닝을 탈삼진 2개를 곁들여 퍼펙트로 막아냈다.
각자의 팀에서 쓰임새를 늘려가고 있는 '용감한 형제들'. 팀 내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들 형제 맞대결 빈도는 더 잦아질 것 같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