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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이슈] "라트비아서 화장→추모 반대"…故김기덕 감독, 영화계도 등돌린 거장의 말로(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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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누군가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에게 끔찍한 폭력을 가했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다."(달시 파켓)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한 김기덕 감독의 씁쓸한 말로가 여러모로 뒷맛을 남기게 한다.

김기덕 감독의 사망 소식은 라트비아 매체를 통해 지난 11일 국내에 전해졌다. 성추문 논란 직후 러시아로 거취를 옮긴 고인은 지난달 20일 발트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에 도착해 유르말라에 집을 매입하는 등 영주권 취득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던 중 이달 5일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러시아 활동 당시 김기덕 감독을 물신양면 도왔던 러시아 아트독페스트 영화제 예술감독인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연락이 두절된 김기덕 감독의 행적을 수소문했고 그 결과 현지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게됐다.

앞서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김기덕 감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라트비아 현지 병원인 리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가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다른 나라로 치료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평소 신부전증을 앓고 있었던 고인은 코로나19 확진이 더해지면서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는 후문. 사망 시각은 11일 새벽 1시 20분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있는 김기덕 감독의 유족은 코로나19 상황 속 국가 간 이동이 쉽지 않은 이유로 라트비아에 직접 가기 힘들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유족은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에 김기덕 감독의 장례 절차를 위임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주라트비아 한국대사관은 유족의 뜻에 따라 다음주 초 병원의 사망증명서가 공식적으로 송부되면 상조회사, 유족과의 위임계약 등 행정적 절차를 거쳐 화장한 다음 유골을 국내로 송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시신을 국내로 운구하기 쉽지 않지만 유골은 특별한 절차 없이 가능해 유족과 상의 끝에 화장을 선택하게 됐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떠난 한국 영화 거장, 김기덕 감독의 말로는 이렇듯 비참 그 자체다. 1995년 영화 '악어'로 데뷔해 '야생동물 보호구역'(97) '파란대문'(98) '섬'(00) '실제상황'(00) '수취인불명'(01) '나쁜 남자'(02) '해안선'(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03) '사마리아'(04) '빈 집'(04) '활'(05) '시간'(06) '숨'(07) '비몽'(08) '아리랑'(11) '아멘'(11) '피에타'(12) '뫼비우스'(13) '일대일'(14) '스톱'(15) '그물'(16)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18) 등 한국 영화계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 끝은 허망한 한 줌의 재로 남게됐다.

'사마리아'를 통해 2004년 열린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감독상), '빈 집'으로 그해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아리랑'으로 2011년 열린 제64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 '피에타'로 2012년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를 사로잡은 한국의 거장 감독으로 명성을 얻은 김기덕 감독이지만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이들이 없다. 문제적인 작품만큼 문제적인 행실에 영화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게 등을 돌린 것.

실제로 김기덕 감독은 '뫼비우스' 촬영 당시 중도 하차한 여배우A로부터 성추행, 폭행, 명예 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당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MBC 'PD수첩'을 통해 또 다른 여배우들 및 스태프들의 충격적인 성폭행 및 성추행 폭로가 이어져 대중의 공분을 샀다. 김기덕 감독은 'PD수첩' 방송 이후 성추문 논란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 비난을 쏟아내는 국내를 떠나 러시아로 활동지를 이동, 연출 활동을 이어갔다. 러시아 내의 높은 인지도 덕분에 지난해 열린 제41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고 이후 라트비아로 이주, 휴양도시 유르말라에 집을 구하고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꿈꿨다. 그러나 인과응보였을까. 코로나19에 감염된 김기덕 감독은 자신이 꿈꾸던 영화를 누리지 못한채 파란만장했던 삶을 뒤로하고 타지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김기덕 감독의 사망 보도에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키르기스스탄의 평론가 굴바라 톨로무쇼 바로부터 카자흐스탄에서 라트비아로 이주해서 활동하던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환갑일인 12월 20일을 불과 한 주 앞두고 코로나19로 타계했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며 "발트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인 오늘(11일) 사망했다고 한다. 한국영화계에 채울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자 슬픔이다.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이외에는 김기덕 감독의 추모를 반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한국 영화 최초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영어 번역을 맡은 달시 파켓은 11일 SNS에 "나는 2018년 한국 TV에서 김기덕의 미투에 관한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나의 수업 때 김기덕 영화를 가르치는 것을 중단했다. 만약 누군가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폭력을 가했다면, 그를 기리는 건 잘못된 일이다. 나는 그가 천재든 상관하지 않는다(그리고 나는 그가 천재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영국 출신 평론가이자 이경미 감독의 남편인 피어스 콘란 역시 SNS에 "김기덕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고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그가 촬영장에서 저지른 끔찍한 행동에 대한 언급 없이 위대한 예술가가 죽은 것에 대해 (대부분 해외에서) 애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슬펐다"며 "영화계에 대한 그의 공헌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의 괴물 같은 성폭력의 희생자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영화 평론가 박우성 역시 "대개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지만 어떤 경우는 또 다른 가해가 된다. 사과는커녕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피해자를 이중으로 괴롭힌 가해자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는 없다. 명복을 빌지 않는 것이 윤리다"고 전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