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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즐기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돼"…'젊은이의양지' 김호정의 치열했던 연기 인생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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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즐길 수 없는 연기, 30년간 치열하게 해왔죠."

카드 연체금을 받으러 갔다가 사라진 후 변사체로 발견된 실습생으로부터 매일 같이 날아오는 의문의 단서를 받게 되는 콜센터 센터장 세연의 이야기를 그린 극현실 미스터리 영화 '젊은이의 양지'(신수원 감독, 준필름 제작). 극중 세연 역의 김호정(52)이 2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1991년 연극으로 데뷔한 이래 연극,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완벽한 인물 밀착 연기를 보여준 30년차 베테랑 배우인 김호정. 올해 초 개봉한 '프랑스 여자'를 통해 현실과 판타지를 오고가는 몽환적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했던 그가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 진짜 어른의 의미를 되묻는다.

극중 그가 연기하는 세연은 휴먼네트워크 콜센터 센터장으로 딸 미래(정하담)을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맘이다. 어릴 때부터 서장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자란 그는 노력만을 강요하다가 어느 날, 어린 콜센터 현장실습생 이준(윤찬영)이 사라지고 취업 준비를 하는 딸이 몰락해 가는 모습을 보며 심경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이날 김호정은 일반 시사회에서의 관객의 반응을 언급하며 "코로나에 상업 영화들이 맥을 못추니까, 오히려 작은 영화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달라진 것 같다"고 입을 열어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어 "이런 작품을 더욱 진지하게 바라봐 주시는 것 같다. 시국이 너무 안좋다보니까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시고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이런 작품을 주의 깊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스펙터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묘한 감정을 끝까지 밀고 지나가는 영화인데 이런 영화를 관객분들이 끝까지 집중을 하고 관람을 해주신다는게 놀랍다.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를 보면 중간에 보다가 나가시는 분도 있는데 어제 일반 시사회를 하고 나니까 관객분들이 생각 보다 더 집중해서 봐주시더라"고 전했다.

신수원 감독과 '마돈나'부터 '젊은이의 양지', 그리고 촬영을 완료한 다음작품까지 세 작품을 함께 한 김호정. 그는 현실을 녹여내는 신수원 감독의 스타일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가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언제 꿈과 희망을 느낄 때는 영화 속 주인공이 내 모습을 닮았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의 영화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리얼하게 담아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칙칙하면서 울움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감정을 꾸준히 가져가면서 극의 흐름을 끌고 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서 "제가 다르덴 형제나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 영화들이 특징이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강요하지도 않고 또 감정을 끝까지 가져간다는 거다. 저는 신수원 감독이 그런 감독님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젊은이의 양지'. 영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며 김호정은 "우리 세대는 많이 누렸다. 지금도 누리고 있다. 내가 아직도 영화의 주인공을 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 때는 열심히만 하면 성취감을 맛보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지 않나. 더군다나 이 펜데믹까지 와서 젊은 이들이 열심히 하면 뭐하나, 기회조차도 오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극중 "세연의 대사에서도 '열심히 하면 다 된다'라고 말하는데, 저 또한 가끔 '왜 해보지도 않냐'고 말할 때도 있는데, 후회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사회는 아닌 것 같아. 이미 과부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 여자'부터 '젊은이의 양지'까지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작품을 연달아 출연한 김호정은 "그런 작품 선택이 힘들진 않냐"고 묻자 "어렸을 때는 힘든 역할이나 작품을 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그런 걸 하고 나면 해소되는 게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역할을 하면서 내가 그 역할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하고 연기를 하고 나면 초심 같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전 워낙에 연극이 베이스가 되서 인간 본성에 대한 작품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하고 나면 의미가 더욱 크다"고 말을 더했다.정하담, 윤찬영 등 어린 배우들과 연기 호흡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 친구들 모두 이야기를 해보면 생각도 굉장히 많더라. 정말 영화 속 그 인물들 같더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속깊은 이야기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들 감정적으로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배우들이다"라며 "특히 찬영이는 촬영할 때 고3이라서 입시 준비를 하면서도 촬영장에 와서 흔들리게 없이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후배 배우들과 호흡 비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자 "최대한 잘 대해주려고 한다. 단순히 후배라서가 아니라 저 또한 누군가가 저한테 잘 대해주길 바라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잘 대해주려고 한다"고 답했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연기하면 자신의 20대 시절을 되돌아 봤다는 김호정. "내가 젊었을 때는, 20대에는 정말 연극에 미쳐서 광기 어리게 살았다. 정말 미친듯이 연기와 연극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이에 "조금 더 젊은 시절을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없냐"고 묻자 김호정은 "즐기면 안된다. 즐기면 아무 것도 안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다른 일은 즐기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연기는 내가 인물 속으로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즐기면 안된다. 지금 연기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배우들, 예를 들어 송강호, 이병헌 같은 배우들 모두 즐기면서 연기하지 않았을 거다. 정말 치열하게만 연기하면서 살았을 거다"라며 "물론 처음에는 즐기면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즐기기만 하면서 연기를 하다보면 즐기는 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벽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더라"고 전했다.김호정은 을의 입장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아야 하는 모습의 세연을 연기하면서 젊은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모욕감을 느끼는 순간은 많았다.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후배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순간, 여배우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며 "지금 당장 택시만 타더라도, 여성이라서 함부로 대하는게 확실히 있다. 어렸을 때부터 현장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과하게 행동하는 순간이 있었다"고 전했다. "과거와 달리 현재 연기 환경은 나아진 것이라고 생각하냐"고 묻자 김호정은 "환경적으로는 나아졌지만, 지금은 더 냉정해진 것 같다. 과거에는 실수가 용서가 됐는데 오히려 지금은 실수가 용서가 되지 않는 시대인 것 같다. 실수를 해도 술 한잔에 해소되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실수 한 번에 끝나는 시대인 것 같다"고 생각을 말했다.

그럼에도 최근 여성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우는 여성 서사 영화의 증가를 반가운 변화라고 말했다. '프랑스 여자'에 이어 '젊은이의 양지'에서도 중년 여성으로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나간 그는 "정말 나에겐 큰 의미다. 다시 또 주인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다. 나이 든 여자가 주인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올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여배우가 좋은 영화가 최근 너무 많더라. 엊그저께 '윤희에게'를 뒤늦게 봤는데 너무 좋더라. 정화씨가 나온 '오케이 마담'도 재미있었다. 지금 여성들이 나서는 영화들이 꽤 있는데 너무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한편,'젊은이의 양지'는 '유리정원' '마돈나' '명왕성'을 연출한 신수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호정, 윤찬영, 정하담, 최준영이 출연한다. 오는 28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hcosun.com 사진 제공=리틀빅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