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충분히 겪을 만한 일이다."
11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있던 KT 위즈 이강철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배정대의 부진을 바라보는 근심이 깊었다. 배정대는 이날 경기 전까지 10월 들어 치른 10경기 타율이 2할2푼2리에 불과했다. 지난달까지 3할대 타율을 유지했지만, 후반기 막판으로 방망이는 차갑게 식어갔다. 앞서 끝내기 안타만 세 번이나 기록하면서 KT의 상위권 도약에 힘을 보탠 그였지만, 풀타임 주전 첫 시즌의 무게감을 좀처럼 이겨내지 못했다.
이 감독은 이런 배정대의 부진을 주전의 통과의례라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배정대에게 찬스 상황이 많이 걸린다. 그건 (9번 타자인) 심우준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리드오프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뭔가 해결을 못하다 보니 자꾸 자신 없는 스윙이 나오고 볼에 손이 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계속 좋은 역량으로 많은 경기를 뛰다 보면 (슬럼프는) 언젠간 겪어야 할 일"이라며 "우리가 배정대에게 애초에 기대한 것은 수비였지, 방망이가 아니다. 본인이 좋은 기량으로 주전 자리를 지키고 많은 경기를 뛰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온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주고 있다"고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이 감독은 이날 배정대를 리드오프가 아닌 6번 타순에 배치했다. 좀 더 편안한 상황에서 공격에 임하라는 배려였다.
이날도 경기가 쉽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첫 타석에서 안타를 만들어낸 배정대는 강민국의 적시타 때 홈을 밟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이후 세 타석에서 각각 범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고개를 숙였다. 팀이 3-1로 앞서고 있던 3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선 두산 최원준의 초구를 공략했으나 땅볼로 물러난 뒤엔 헬멧을 그라운드에 집어 던지면서 분을 삭이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배정대는 마지막 타석이었던 연장 10회말 2사 만루에서 두산 이영하를 상대로 우중간을 꿰뚫는 끝내기 안타를 만들어내면서 KT에 또 한 번의 승리를 안겼다. 이날 끝내기 안타로 배정대는 2004년 당시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던 클리프 브룸바가 갖고 있던 한 시즌 개인 최다 끝내기 안타 기록(4개)과 타이를 이루게 됐다.
배정대는 "어제 경기를 마친 뒤 '이렇게 부진한 상태로 시즌을 마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바람대로 이뤄져 기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또 "마지막 이닝을 앞두고 로하스가 '내 힘을 너에게 나눠 주겠다'고 포옹을 해줬는데, 정말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배정대는 "끝내기 상황이 계속 오다 보니 좀 더 차분하게 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마지막 타석에선) 치면 끝난다는 생각만 했다"고 덧붙였다. 끝내기 안타 뒤 두 팔을 벌려 여유롭다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친 부분을 두고는 "긴장이 안됐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동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어필하고 싶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배정대는 "올 시즌 일정이 타이트 하다 보니 전보다 힘든 느낌은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게 맞다. 이렇게 안 좋을 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 한다. 앞으로 야구를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선전을 다짐했다.
수원=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