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이)정후에게 (오현택의 공략법을)물어봤다. 직구 타이밍보다 약간 늦게 친다는 느낌으로 슬라이더를 노린 게 끝내기 안타가 됐다."
끝내기는 쳐본 자만이 그 맛을 안다고 한다. 고척돔에 이틀 연속 '영웅'이 탄생했다. 전날 이정후에 이어 이날은 주효상이 키움의 '히어로'로 등극했다.
키움에는 주전급 포수가 2명이나 있다. 박동원과 이지영이 마스크를 나눠쓴다. 두 선수 모두 타격까지 훌륭하다. 올시즌 커리어 하이를 맞이한 박동원은 타율 3할3푼6리 8홈런 29타점에 OPS(출루율+장타율)이 1.018에 달한다. 이지영도 장타력은 박동원에 비해 좀 아쉽지만, 타율 3할5리 14타점 OPS 0.733으로 쏠쏠한 타격 솜씨를 뽐내고 있다.
때문에 주효상은 2016년 키움에 1차 지명된 유망주임에도 1군 밥먹기가 쉽지 않다. 종종 1군에 올라와 경기 후반 대타 혹은 대수비로 가끔 출전하는게 고작이다. 지난해에는 18경기 출전에 그쳤다. 올해는 5월에 6경기, 4타석의 기회를 받았다. 6월에는 18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가 첫 출전이었다.
하지만 주효상은 기어코 '일'을 냈다. 이날 2대2로 맞선 연장 10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김주형 대신 대타로 나선 주효상은 롯데 오현택의 3구 슬라이더를 통타, 그대로 우익수 손아섭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쳐냈다. 1루 주자 박정음은 결사적인 달리기에 이어 절묘한 슬라이딩으로 홈을 터치하며 치열했던 승부를 극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날 주효상의 '대타 끝내기 안타'는 시즌 4호, KBO리그 통산 80호로 기록됐다.
올해 키움은 박병호가 부상으로 빠지는 등 타선이 예년 같지 않다. 올시즌 팀 타율은 7위(2할6푼5리), OPS는 5위(0.773)다. 롯데와 두 경기 연속 치열한 투수전을 벌인 이유다. 하지만 이정후에 이어 주효상이 난세 영웅으로 등극하며 2연승을 달리게 됐다. 앞서 주장 김상수의 블론 세이브 여파도 최소화했다.
주효상은 지난해 10월 7일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끝내기 땅볼'을 친 바 있다. 하지만 끝내기 안타는 야구 인생 처음이었다.
'영웅'만이 누릴 수 있는 인터뷰의 영광. 주효상에겐 감사할 사람이 많았다. 먼저 주효상은 타석에 들어서기에 앞서 전날 끝내기 안타를 때린 이정후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밝혔다. 이정후의 노하우가 빛을 발한 순간이다.
"(이)정후가 말하길 (오현택의)직구는 약간 투심 식이고, 슬라이더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직구 타이밍에 칠 수 있는 슬라이더냐'고 물었더니 '걸리는 것 같기도 하다'고 하더라. 직구보다 약간 늦은 타이밍에 슬라이더를 노린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잘 맞았다."
주효상은 올해 상무 입단을 노크할 예정이다. 출전시간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 좀 민감할 만도 하다. 하지만 주효상은 "출전 기회가 적은 건 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상하지 않다"며 어른스런 면모를 보였다.
선배 포수들이 살뜰하게 돌봐준다는 소식도 전했다. 주효상은 "원래 (박)동원이 형이나 (이)지영이 형에게 볼배합에 대해 자주 조언을 구했다. 요즘 동원이 형이 워낙 잘 치고 있어 타격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랜만에 1군에 올라왔는데, 안타를 쳐서 기쁘다. 기록에 연연하면 내 실력이 안 나온다. 후회없이 간절하게 한번 치고 오자는 마음이 통한 것 같다."
고척=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