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LA다저스 류현진(32)의 디그롬 관련 발언이 화제다.
류현진은 29일(한국시각) 샌프란스시코 자이언츠와의 시즌 피날레 등판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시즌 14승(5패)을 수확한 류현진은 평균자책점을 2.32로 끌어내리며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확정지었다.
대단한 성과다. 역대 동양인 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는 단 한명도 없었다. 비록 1점대 평균자책점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리그 최고 투수로서 상징적인 수치다. 게다가 류현진은 짧은 슬럼프였던 후반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을 1점 가까이 까먹기 전까지 줄곧 1점대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평균자책점 1위를 확정 짓자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류현진이 다시 사이영상 경쟁에 불을 지폈다'는 논조의 글들이 쏟아졌다. 지역지 오렌지카운티레지스터는 '류현진이 사이영상을 받을 만한 투구를 펼치며 사이영상 유력 후보로 다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LA타임스도 '류현진이 사이영상 이력서를 완성했다'고 했고, MLB.com 역시 '류현진이 사이영상 수상에 마지막 입찰을 했다'고 보도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 등 LA다저스 내부에서도 류현진 띄우기에 나섰다. '류현진이 당연히 사이영상 수상자가 돼야 한다'는 논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MLB.com 켄 거닉 기자의 류현진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조금 달라졌다. 류현진은 경기 후 "솔직히 말해 디그롬이 사이영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I honestly think Jacob deGrom deserves it) 정말 중요한 팩터인 이닝과 탈삼진 부문에서 정말 대단한 시즌을 보냈다"고 경쟁자를 극찬했다. 류현진은 "당신이 디그롬에게 투표하라는 뜻은 물론 아니"라며 "투표는 당신에게 달렸다. 나는 그저 내 자신에게 투표하는 게 내키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띄우는 동양적 겸양의 마인드가 물씬 묻어나는 인터뷰 내용.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역시 대인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류현진이 뛰고 있는 무대는 서양이다. 서양적 사고방식으로는 마치 사이영상을 지레 포기한 듯한 뉘앙스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서양인들 역시 경쟁자를 충분히 칭찬하지만 통상 '그 선수 역시(too, also) 훌륭한 선수'라는 식의 표현 속에 분명한 한계를 둔다. 그리고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어필한다.
실제 이 인터뷰 이후 미국 언론, 특히 뉴욕을 중심으로 한 언론의 논조가 살짝 바뀌었다. 상당수의 매체가 켄 거닉과의 인터뷰 내용을 근거로 '류현진은 디그롬이 사이영상을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Dodgers' Hyun-Jin Ryu believes Mets' Jacob deGrom should win Cy Young)'고 해석했다. 미묘한 차이지만 "디그롬이 받을 만 하다"는 실제 발언이 어느새 "받아야 한다"로 둔갑한 셈.
양 리그 최고의 투수를 선정하는 사이영상은 전미야구기자협회 소속 기자단 투표로 결정된다. 사람이 뽑는거라 전체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최근 사이영상 흐름은 평균자책점이 중시되는 추세였다. 물론 탈삼진과 이닝 등 다른 많은 지표에서 디그롬이 앞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어필을 해봐야 한다. 수상 여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표를 획득하느냐도 중요하다.
지레 포기한 것 같은 발언으로 둔갑한 류현진의 인터뷰 내용이 유감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