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류현진(32·LA 다저스)은 이날 환한 얼굴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손에는 자신이 만든 첫 홈런으로 연결된 공이 들려 있었다.
류현진은 23일(한국시각) 홈구장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팀이 0-1로 뒤진 5회말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쳤다. 상대 선발 투수 안토니오 센자텔라와의 2S 승부에서 들어온 94마일(약 151㎞)짜리 직구를 걷어올려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2013년 메이저리그 진출 뒤 처음으로 그린 아치. 이 홈런으로 동점을 만든 다저스는 코디 벨린저의 만루포까지 더해 승부를 뒤집었고, 결국 7대4로 이겼다.
-개인 통산 첫 홈런을 쳤다.
▶타석에 있을 때는 '아웃 안 당하고 어떻게 하면 방망이에 맞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 오늘은 낮 경기라서 넘어간 거 같다. 저녁 경기라면 안 넘어가지 않았을까.
-팀이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을 만든 중요한 홈런을 쳤다.
▶오늘 경기의 가장 큰 계기가 됐다. 정말 좋은 타구였다. 개인적으로도 첫 번째 홈런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홈런을 계기로 팀이 대량 득점을 해줬다. 오늘 (홈런을 친) 그 타석이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홈런을 친 후 베이스를 천천히 돌았는데, 무슨 생각을 했나.
▶포커페이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너무 신나 있으면 투구하는데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이 내 힘이 좋았다고 말해줬다.
-오늘 홈런 칠 때 누구 배트를 썼나.
▶벨린저(웃음).
-개인 통산 첫 홈런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는데.
▶낮경기가 아니었으면 안 넘어갔을 거다. 좋은 홈런이 좋은 승리를 하는 데 계기가 돼서 너무 기쁘다. 7년 동안 정말 안 나왔던 일이 나와서 너무 좋다.
-홈런 친 공은 누가 찾아줬나.
▶(통역을 쳐다 보며) 얘기해. 누가 받아줬다고? (통역: 경비 요원이다. 팬이 잡았는데, 경비에게 넘겨줬다.)
-투수가 친 홈런 공을 팬이 아무것도 받지 않고 순순히 내줬나?
▶다른 걸 뭘 드렸다고 한다(웃음). (통역: 다른 다저스 용품을 줬다.)
-처음 타구를 쳤을 때 느낌이 어땠나.
▶안 넘어가는 줄 알았다. 낮 경기가 좋긴 하다.
-오늘 스스로 투구 내용을 평가한다면.
▶피홈런 두 개 빼고는 좋았던 경기였다. 첫 번째 홈런을 그렇다 쳐도 두 번째 홈런은 실투였다. 상대 선수가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타구가 힘 있게 나갔다. 또 한번 실투를 늘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느꼈던 경기다. 그러나 마운드에서 7이닝까지 던질 수 있었던 건 좋았다.
-포수 윌 스미스와 배터리를 이뤘을 때 유독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 오늘 홈런을 맞은 상황에서 포수와의 호흡이 영향을 준 부분은 없는지.
▶두 홈런 다 내가 포수 글러브 위치에 맞게 던졌다면 그런 타구는 안 나왔을 거다. 포수가 그렇게 타깃(target)을 만들어주면 내가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홈런을 맞은) 두 개의 공은 내 문제였다.
-스미스와 배터리를 이루는 데 특별히 느끼는 어려움은 없는 건가.
▶문제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안 좋았던 시기에 때마침 스미스가 포수를 보게 돼서 어떻게 보면 내가 미안하게 생각한다. 호흡이 안 맞거나 그런 부분은 없다. 오늘도 평소와 똑같이 준비했는데 투구 내용이 괜찮았다.
-하필 스미스와 호흡을 맞춘 시기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점이 부각되고 있는데.
▶포수가 누군지와는 별개로 내 투구 밸런스가 잘 안 맞았다. 직구가 미스가 많다 보니까 장타도 많이 나왔었고. 그래서 그랬던 거다. 내 투구에 문제가 있었다.
-윌 스미스와 호흡에 문제가 없다고는 했지만, 한 번 정도는 배터리를 이뤘을 때 좋은 결과를 만들 필요가 있지 않았나.
▶없다. 똑같은 질문 아닌가(웃음). 콜로라도 원정에서 6이닝 무실점한 적도 있고. 똑같은 대답이다. 내가 안 좋았던 게 문제다. 포수는 잘못 없다. 투수가 못 던진 거다.
-정규시즌 등판이 이제 한 경기밖에 남지 않았다.
▶작은 실수도 없이 해야 한다. 중요한 경기가 다가오니까 오늘 같은 실투 없이 던질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해야 한다. 그런 것만 없으면 큰 장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몸 관리 잘해서 잘 준비해야 한다.
-올 시즌 148탈삼진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2013년 154탈삼진 다음으로 높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전혀 몰랐다. 원래부터 내가 삼진을 그렇게 많이 잡는 투수는 아니다. 약한 타구가 나오게끔 제구에 신경 쓰면서 하는 편이다. 그런 기록이 나왔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몸이 계속 좋다 보니까 가능했던 거 같다.
-선발 등판이 한 번 더 남은 현재 사이영상 경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진작 포기한지 오래됐다. 진작에 포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 시작할 때부터 목표가 한 시즌을 잘 치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온 것만으로도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영상 수상 여부는) 늘 나중 일이라고 생각했다. 초반에 너무 좋았을 때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지막 등판은 포스트시즌을 고려해서 투구수나 이닝수를 제한할 수도 있지 않나.
▶상관 없을 거 같다. 원래 준비하는대로 준비할 계획이다. 물론 얘기는 해봐야한다. 시키는대로 가야한다(웃음).
LA=한만성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