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 정규시즌 개막일은 역대 가장 빠른 3월 23일이었다. 제2회 프리미어12가 11월 초에 열리기 때문에 한국시리즈를 10월 안에 끝내려면 정규시즌 일정을 앞당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부작용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시즌이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니 전지훈련과 시범경기 기간이 짧아졌고, 선수들은 컨디션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지도 못하고 실전을 치러야 했다. 감독들은 외국인 선수와 신인급 및 백업 선수들을 테스트할 기회가 절대 부족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한국 야구 대표팀이 참가함에 따라 8월 17일~9월 3일까지 18일간 정규시즌이 중단됐다. 지난해 정규시즌 개막일은 3월 24일이었고, 한국시리즈는 역대 가장 늦은 11월 12일에 끝났다.
국제대회 때문에 정규시즌이 영향을 받은 것은 프로야구 선수가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한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다. 그해 아시안게임은 12월에 열려 정규시즌 일정에 별 영향이 없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도 12월에 개최돼 프로 선수들이 참가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봄이나 여름, 가을에 열린 국제대회는 정규시즌 일정에 영향을 줬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8년 자카르타-발렘방 아시안게임,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9년 WBC, 2013년 WBC, 2017년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이다.
10개팀 체제가 시작된 2015년 이후에는 팀당 경기수가 144게임으로 늘어나면서 일정 부담이 더욱 가중됐다. 지난해와 올해 개막전이 '꽃샘 추위'가 한창인 시기에 열린 이유다.
이번에는 가을 장마가 정규시즌 일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13호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이번 주 프로야구가 대거 취소될 상황에 놓였다 .이미 지난 4일 잠실, 수원, 인천 등 수도권 3경기가 우천 순연됐고, 5일에도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있어 취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KBO는 이달 초 이미 취소경기 재편성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정규시즌을 28일 마치고 30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시작으로 포스트시즌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가을 장마로 인한 추가적인 우천 순연이 대거 발생할 것으로 보여 재편성 일정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비일을 마련해 놓았지만, 취소 경기수가 한도를 넘어서면 10월 초까지 정규시즌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태풍이 진로를 바꿔 빗겨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황이 이렇다 이번에도 돔구장 얘기가 나온다. 한국처럼 장마, 태풍 등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에 돔구장이 필요하다는데 맞는 말이다. 서울 고척스카이돔 하나 가지고는 지금의 일정 시스템을 소화하기 힘들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함께 쓰는 잠실구장을 대체할 새 돔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20여년 전부터 나왔다.
물론 당장 돔구장이 지어질 수도 없고 짓는다고 해도 몇 년은 걸린다. 지금과 같은 '일정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감독과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으로 리그를 치를 수 있도록 하려면 경기수를 줄이거나 국제대회를 포기해야 한다. 적어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은 아마추어 야구에 일임하는 게 좋다. 3월에 열리는 WBC와 11월 열리는 프리미어12에 대해서도 선택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 KBO리그가 그동안 국제대회에 심혈을 기울인 건 애국심, 국위선양 등 전통적 가치관에 따른 것이다. 부차적으로는 선수들의 병역 혜택이 깔려 있다. 물론 국제 무대를 누비는 선수들을 향한 팬들의 지지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변했다. 양질의 프로야구를 만드는 것도 애국심이고 국위선양이다. 메이저리그는 자신들이 주최하는 WBC를 제외한 국제대회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본 프로야구 역시 자국에서 개최되지 않는 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기간에 시즌을 중단하지 않는다. 144경기와 모든 국제대회를 다 취할 수는 없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