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20세 이하 대표팀이 2019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남자 축구가 FIFA 주관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정용호는 포르투갈, 남아공, 아르헨티나와 함께 한 죽음의 조를 통과한데 이어, 일본과의 16강전을 극적으로 넘었다. 8강에서 세네갈과 명승부 끝에서 36년만의 4강 신화를 재현한 정정용호는 4강에서 에콰도르를 꺾으며, 한국축구의 새 장을 열었다.
결승에서 아쉽게 우크라이나에 패했지만, 이미 기적을 쓴 정정용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드라마틱한 성공, 하지만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생각해보면 한국축구가 좋은 성적을 냈던 순간마다, 세가지 공식이 있었다. 이번 정정용호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공식1. 철저한 장기 플랜
정정용 감독도, 이강인도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지난 2년'이었다. 이강인은 "지난 2년간 코칭스태프들과 형들이 정말 많이 고생했다. 그 고생을 보답받기 위해서라도 꼭 우승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랬다. 정정용호의 성공은 단기간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2년전인 2017년 5월 첫 소집부터 지금까지, U-18이 U-20 대표팀이 될때까지 철저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다. 2017년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예선에 대비하기 위해 첫 소집된 정정용호는 2년간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이강인도 이때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됐다. 이강인의 재능을 알아본 정 감독은 일찌감치 팀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강인이라는 천재가 속했음에도, 팀 분위기나 밸런스가 깨지지 않았던 것은 오래전부터 함께 발을 맞췄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2년 동안 이 연령대를 폭넓게 지켜보며, 선수들을 관찰했다. 50명의 풀 안에서 꾸준히 점검했다. 동시에 육성도 함께 했다. 정 감독은 훈련 후 선수들에게 맞춤형 '노트'를 줬다. 이 노트에는 부족한 부분과 이를 보완할 해결법이 담겨 있었다. 족집게 과외에 선수들은 정 감독을 신뢰했고, 정 감독 역시 달라진 선수들을 다시 부르며 기회를 줬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만들었고, 선수들은 정 감독이 추구하는 철학과 방향을 숙지했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협회는 지난해 말 일찌감치 정 감독과 재계약을 했다.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데 있어 안정감과 책임감을 갖출 수 있었다. 정 감독이 대회 전 출사표로 '성적'이 아닌 '육성과 경험'을 꺼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성적에 쫓기다 자충수를 두던 과거와 달리, 정정용호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축구를 추구했고, 결승 진출까지 성공했다.
▶공식2. 훌륭한 지도자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하면 역시 정 감독의 재발견이다. 정 감독은 대회 내내 '마법'이라고 불릴 정도의 탁월한 용병술과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온화한 카리스마로 주목을 받았다. 정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선수들은 "감독님을 위해 뛰겠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에이스' 이강인은 "절대 못잊을 감독"이라고 할 정도였다.
정 감독은 협회가 키워낸 지도자다. 사실 정 감독은 현역 시절 국가대표는 물론, 프로 무대도 밟지 못한 철저한 무명이었다. 지도자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다. 정 감독은 배움을 통해 내공을 쌓았다. 은퇴 후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운명처럼 유소년들을 만났다. 2005년에는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2006년부터 대한축구협회의 전임 지도자로 들어와 다양한 연령대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한 정 감독은 축구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협회는 그런 정 감독을 믿고 기회를 줬다.
준비된 감독의 힘은 달랐다. 정 감독은 감과 임기응변에 의존했던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분명한 계획 속 팀을 이끌었다. 3-5-2와 4-3-3이라는 두가지 카드를 확실히 준비한 후 상황에 맞게 적용했다. 오랜기간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자율을 줬다.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관계로 선수들과 소통했고,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정 감독은 팀을 하나로 묶었고, 준비된 마법은 생애 첫 메이저대회에서 꽃을 피웠다.
물론 정 감독 혼자 이룬 성과는 아니다. 정 감독은 틈만나면 다른 코칭스태프에 대한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공오균, 인창수, 김대환, 오성환 코치와 철저한 분업화를 이루며, 이들의 전문성을 존중했다. 이번 대회 동안 단 한명의 부상자도 나오지 않은 것은 독일에서 스포츠과학 석박사 과정을 거친 오성환 피지컬 코치와의 협업이 낳은 결과다. 선수들은 이런 코칭스태프의 힘을 믿고 따랐다.
▶공식3. 좋은 선수
아무리 철저한 계획과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해도 이를 수행할 좋은 선수들이 없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정정용호의 가장 큰 힘은 원팀이지만, 역시 '에이스' 이강인(발렌시아)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연령대에서는 경험이 부족한만큼 막히는 순간, 이 고비를 넘어 줄 수 있는 '슈퍼에이스'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18세의 이강인은 에이스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놀라운 기술과 정교한 킥, 센스와 담대함을 선보인 이강인은 아시아 선수 최초의 '골든볼'을 수상했다.
이강인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지만, 다른 선수들의 활약도 못지 않았다. '빛광연' 이광연(강원)의 선방쇼는 대회 내내 팀을 구해냈고, 오세훈(아산)의 높이는 위기마다 빛을 발했다. 이지솔(대전) 김현우(디나모 자그레브) 이재익(강원)이 이룬 스리백은 탄탄했고, 최 준(연세대) 황태연(안산)이 포진한 좌우 윙백은 날카로웠다. 조영욱(서울) 엄원상(광주) 고재현(대구) 김세윤(대전) 등의 활약도 빛났다.
K리그가 만든 걸작들이다. 정정용호 선수 21명 중 K리그 소속은 총 15명, K리그 유스 출신은 12명이다. K리거 또는 K리그 유스 출신은 총 18명이다. 2013년 대회 K리그 소속 6명, 유스 출신 7명, 2017년 대회 각각 7명, 11명에 비해 급격히 늘었다. 협회 역시 2014년 시작된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번 대표팀의 대다수는 정 감독의 지도 아래 어린 시절부터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을 함께 한 선수들이다. 협회와 연맹의 체계적인 시스템 속 자란 이들은 세계 무대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였다. 정 감독은 "이들은 향후 5~10년 동안 그 포지션에서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