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하지 않는다'와 '능력이 없다'는 전혀 다른 의미다.
파울루 벤투(49) 축구대표팀 감독이 그간 친선경기를 통해 '쓸·놈·쓸'(쓰던 선수만 기용한다) 논란에 휩싸인 게 사실이지만, 선발명단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았을 뿐, 자신의 철학에 맞게 팀을 끌고 가고 있다. 외부의 시선과 달리 선수단 내부에선 벤투 코치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는 게 선수와 선수 측 관계자 다수의 전언이다.
벤투 감독이 비슷한 선수 구성으로 '스리백' 카드를 꺼낸 지난 7일 호주 평가전은 많은 의문점을 낳았다. 하지만 이는 플랜B를 점검하려는 의도였고, 진짜 카드는 이란을 상대로 빼 들었다. 이란전을, 오는 9월 시작하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예선'의 출발지점으로 여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벤투 감독은 이날 포백과 투톱을 중심으로 한 4-1-3-2 전술을 가동했다. 2019년 AFC 아시안컵에서 '무색무취'한 4-2-3-1 전술로 8강 탈락 아픔을 겪은 뒤, 3월 볼리비아, 콜롬비아와의 국내 친선 2연전에서도 테스트한 바로 그 전술이다. 중앙 미드필더 한 명(황인범)을 전진 배치하고, 슈팅 능력이 뛰어난 측면 공격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전방에 세워 결과적으로 공격을 극대화하겠단 복안이다. 당시 새로운 콘셉트로 2연승을 따낸 벤투 감독은 사실상 2군을 대동한 호주가 아니라, 아시아 예선에서 만날 수 있는 팀 중 극강의 전력을 지닌 이란을 상대로 다시금 실효성을 점검하고자 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기본 틀'은 얘기한 대로 그대로 유지했다. 포지션별 핵심 선수들인 공격수 손흥민 황의조, 공격형 미드필더 이재성, 중앙 미드필더 황인범, 포백 홍 철 김영권 김민재 이 용 등이다. 이들 8명은 주전으로 봐도 무방한 선수들이다. 여기에 약간의 실험을 가미했다. A매치 경험이 전무한 백승호를 '1'에 해당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측면 '돌격대장' 역할을 나상호에게 맡겼다. 종종 빌드업 과정에서 킥 미스를 범하는 골키퍼 조현우도 실험 대상에 올렸다.
호주를 상대로 내용을 잃고 결과만 잡았던 선수들은 당시 "스리백 전술이 낯설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몸에 맞는 옷(포백 전술)을 입으니 전혀 다른 경기력을 뽐냈다. 측면 수비수들의 적극적인 오버래핑과 2선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의 활발한 스위칭으로 이란 수비진들을 정신없이 흔들어댔다. 빠르고, 역동적인 공격으로 6개의 유효슛을 때렸다. 슛이 골문을 향할 때마다 6만여 관중들이 환호했다. 후반 12분 황의조가 감각적인 칩샷으로 이란전 8년 무득점 징크스도 끊어냈다.
백승호라는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했다. 기성용 은퇴와 정우영 부상이 맞물려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는 취약점으로 꼽혀왔던 터다. 백승호는 적재적소에서 태클로 상대 역습을 차단하고, 차분하게 패스를 연결했다. 나상호도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공격에 활력을 더했다. 골대를 강타하는 발리슛을 날리기도 했다.
이란전을 통해선 결과(1대1) 보단 내용을 잡은 벤투 감독은 "계속해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려고 노력했다. 월드컵 예선을 준비할 좋은 기회였다고 본다"며 "약점은 내부에서 논의하고 대비하되, 대외적으론 장점을 부각하면서 잘 준비하려고 한다. 9월까지 남은 기간에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상암=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