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배려와 존중이 무색했다.
NC 다이노스 외국인 투수 에디 버틀러(28)가 또 폭발했다. 6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팀이 0-1로 뒤지던 5회말 선두 타자 이학주를 볼넷 출루시킨 직후 글러브를 벗어 발로 걷어찼다. 원현식 주심이 경고 조치를 내렸고, NC 이동욱 감독이 통역을 대동하고 마운드에 올라 버틀러와 대화를 나눴다. 붉게 물든 얼굴로 이 감독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버틀러는 7회까지 마운드를 지켰지만, 4실점 하면서 패전 투수가 됐다.
버틀러는 최근 5개월 된 딸 소피아의 심장병 수술 참관 차 미국에 다녀왔다. NC 입단 직전 얻은 딸의 병환에 이 감독은 팀 사정을 막론하고 미국행을 허락했다. NC 선수단은 쾌유를 기원하는 응원 메시지와 유니폼, 마스코트 인형을 버틀러에게 전달했다. 무사히 마무리된 딸의 수술을 계기로 버틀러가 NC 에이스 다운 역투를 펼쳐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한 채 자신을 응원해준 동료와 코칭스태프, 자신과 마주한 상대팀, 휴일을 맞아 야구장을 찾은 팬들 앞에서 상식에 어긋난 추태를 부렸다.
버틀러의 기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1일 부산 롯데전에선 거듭되는 실점과 실책에 분을 참지 못한 채 공을 그라운드에 내동댕이 치더니, 잇단 볼 선언에 짜증섞인 모션을 취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이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버틀러를 불러세웠다. TV 중계 화면에 비친 이 감독의 모습은 격앙되어 있었다. 이 감독은 당시 대화에 대해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 뒤 "'경상도식'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렇게(다소 격앙된 듯한) 비춰진 듯 하다"고 말했다.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외국인 선수의 특성, 팀의 일원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버틀러에게 닿지 못한 듯 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들의 감정 표현은 일상적이다. 삼진을 당한 타자가 배트와 헬멧을 집어 던지거나, 배트를 부러뜨리기도 한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애꿎은 집기를 부수는 행위도 다반사. '코리안특급' 박찬호도 미국 시절 부진한 투구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물통을 뒤집어 엎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행위 대부분이 스스로의 부진에 대한 분노의 표출, 동료들을 향한 미안함을 대신하는 열정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런 '열정'도 선을 넘는 순간 '추태'가 된다. 시간을 쪼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 앞에서 글러브를 걷어차는 행위를 과연 '열정'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호국영령을 향한 묵념으로 시작한 현충일 야구, 그라운드 가장 높은 자리에서 보인 버틀러의 행동은 백번 양보해도 '열정', '순간의 화' 정도로 포장할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NC 벤치의 대처도 아쉬웠다. 버틀러의 돌출 행동에 구두 경고가 아닌 '강판' 등 강경한 조치로 경고를 줄 필요가 있었다. 1점차 접전, 1경기 승패에 따라 달라지는 최근 흐름은 버틀러의 기행이 벌어진 순간 허공으로 날아갔다. 동료, 팬을 향한 예의를 걷어찬 선수가 만든 승리에 박수를 치기도 어렵다. 순식간에 벌어진,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다.
볼썽사나운 모습이 반복될수록 바라보는 시선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버틀러와 NC 모두 이날의 행동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