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스무살에 남편과 생이별한채 평생을 살아온 아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배우 김혜수의 경건한 목소리가 순국 선열과 독립유공자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제 64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나라에 청춘을 바친 선열들과 그 유족들을 위로했다. 군복무 중인 배우 김민석과 방성준(성준), 가수 비투비 이창섭, B1A4 신동우(신우), 빅스 차학연(엔)과 국방부 중창단의 애국가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이날 추념식의 절정은 김혜수의 편지 낭독이 장식했다. 이날 김혜수는 6·25 학도병 전사자인 故성복환 씨의 아내 김차희(93) 씨의 편지 낭독을 맡았다. 성복환 씨는 1950년 8월 10일 학도병으로 입대한 뒤 전사, 유해조차 수습되지 못한 상태다. 김차희 씨는 이날 현장에도 함께 했다.
김혜수는 경건한 검은색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김혜수는 "서울 현충원은 김차희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할머니를 대신해 오랜 그리움만큼이나 간절한 소망을 전한다"며 자신이 읽을 편지를 소개했다.
김혜수는 "당신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 내게 남겨진 것은 당신의 사진 한장 뿐이다. 뒤돌아보면 그 가혹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무살에 결혼해 신혼살림도 차리지 못하고 큰댁에 머물던 어느날, 학도병으로 징집돼 부모님께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그 심정 어땠을까"라며 성복환 씨의 마음을 되새겼다.
이어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난 몇달 후 받은 전사통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10년 큰댁에 머물면서 많은 식구들 속 내 설 자리는 없었다"면서 "식음을 끊고 지내면서도 친정 엄마 생각에 죽을 수 없었다. 연금 타러 오라는 통지에도 며칠을 마음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70여년간 이어져온 김차희 씨의 아픈 속내를 드러냈다.
특히 '국립묘지 구경하러간다'는 말에 대한 서러움이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김차희 씨는 "당신의 흔적을 찾아 국립묘지에 올 때면, 회색 비석이 군인들이 쓰러져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젊은 청춘을 바친 무덤을 보고 어찌 구경하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라며 단장(斷腸)의 고통을 호소하는 한편 "평생을 기다림으로 홀로 살았다. 큰댁 막내 조카가 작년부터 당신의 제사를 올려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마음도 전했다.
편지 말미에는 "마지막으로 소망이 있다면 당신의 유해가 발굴되어 국립묘지에 함께 묻히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내게 남겨진 젊은 시절 당신의 증명사진 하나 품고 가면 구순이 훌쩍 넘은 내 모습을 보고 당신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며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김차희 씨의 애절한 마음을 담아낸 김혜수의 울림 있는 낭독이 돋보였다. 이날 김혜수는 명징(明澄)한 목소리로 학도병 전사자 유족의 아픔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전달해 듣는 이를 울렸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