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다메트로폴리타노(스페인 마드리드)=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손흥민이 울었다.
경기 종료 휘슬. 고개를 숙인채 몇 걸음 걸었다.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피치 위로 상체까지 눕혔다. 까만 하늘을 바라봤다. 아쉬움이 큰 90분이었다.
손흥민은 1일 밤(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토트넘과 리버풀의 2018~2019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풀타임 출전했다. 2011년 웸블리에서 박지성이 결승 무대에 선 이후 한국인 선수로는 8년만이었다. 그러나 토트넘은 졌다. 0대2. 리버풀이 통산 6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손흥민과 토트넘은 사상 첫 결승 진출에 우승을 노렸지만 물거품이 됐다.
그라운드에 누운 손흥민은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팔로 눈을 감쌌다. 역부족이었다. 유니폼을 끌어올려 눈을 가렸다. 벤 데이비스와 파울로 가자니가가 다가왔다. 손흥민의 상체를 끌어올렸다. 머리를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 루카스 모우라도 위로했다. 모하메드 살라도 어깨를 쓰다듬었다. 마네, 산체스, 포이스 등이 왔다. 손흥민은 피치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상의로 눈물을 훔치며 그라운드를 서성였다. 팀동료 그리고 리버풀 선수들과 악수를 했지만 아쉬움을 덜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손흥민은 이날 실질적으로 토트넘의 공격을 이끌었다. 주포 해리 케인은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었다. 부상에서 막 복귀했지만 무리였다. 제대로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손흥민은 모든 것을 보여줬다. 날카로운 슈팅과 폭풍질주를 선보였다. 토트넘 선수들 가운데 최고의 활약이었다. 다만 리버풀의 수비진과 골키퍼의 선방에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시상식이 시작됐다. 토트넘 선수들이 먼저 준우승 메달을 받았다. 리버풀 선수들의 격려를 받으며 시상대로 향했다. 샤키리, 판 다이크, 살라와 포옹을 했다. 메달을 받은 뒤 우승 트로피 '빅이어'를 외면한 채 시상대를 지나쳤다.
팬들에게 인사하러 갔다. 코너플래그 앞으로 향했다. 팬들이 손흥민을 위로했다. 몇몇 팬들은 손흥민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손흥민은 광고판을 넘어갔다. 그리고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아버지 손웅정씨가 내려왔다. 손흥민은 아버지와 진하게 포옹했다. 아버지는 손흥민을 토닥였다. 그리고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잘했다는 뜻이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 토트넘 선수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인 채 나갔다. 케인이 지나갈 때는 그 누구도 선뜻 말을 걸지 못했다.
손흥민이 나왔다. 조심스럽게 인터뷰 의사를 물었다. 손흥민은 "죄송해요. 말 실수를 할까봐"라며 정중히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취재진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전했다. 손흥민은 고개를 떨군 채 믹스트존을 나갔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다시 한국 취재진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취재진들도 함께 허리를 굽혔다. 고군분투한 토트넘 에이스를 향한 박수를 담았다.
기자회견장. 포체티노 감독은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선수들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케인의 선발 출전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승장 클롭 감독은 "너무나 기쁘다. 지난해에는 준우승 메달을 가지고 휴가를 보냈다. 그리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포체티노 감독과 토트넘이 어떻게 느낄지 잘 안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손흥민은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바로 한국으로 향한다. 4일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