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관계'는 감독들이 가장 꺼리는 것 중에 하나다. 일단 한번 형성이 돼 버리면 그 여파가 오래가는 데다 특히 그 팀과 혹여 플레이오프 단기전에서라도 만나게 되면 전반적인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이런 고민을 하는 쪽은 하위권 팀이다. 순위가 낮은 팀이 상위권 팀에게 번번히 일격을 맞아 순위 상승의 목표를 이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천적관계'에서 포식자는 주로 상위권 팀이 되는 게 통상적인 형태. 2018~2019시즌 SKT 5GX 프로농구에서 리그 1위 울산 현대모비스와 2위 인천 전자랜드가 그런 통상적 천적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전자랜드는 리그 2위의 좋은 성적임에도 4라운드까지 현대모비스에 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이와는 정 반대로 상위팀이 하위권 팀에게 계속 얻어맞는 '역(逆) 천적관계'도 있다. 안양 KGC와 고양 오리온이 바로 그런 관계다. KGC가 훨씬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오리온만 만나면 졌다.
KGC는 5일까지 공동 4위로 선전 중이다. 그러나 이보다 좀 더 높은 순위를 노리고 있다. KGC 김승기 감독은 최근 "3라운드 정도까지는 선수들의 부상과 체력 관리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전력으로 해보려고 한다"며 본격적인 순위 경쟁에 관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김 감독의 야망에는 자꾸 태클이 걸린다. 그 상대가 바로 오리온이다.
오리온은 시즌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며 하위권으로 급전직하한 팀이다. 그나마 2~3라운드에서 조금씩 팀 분위기가 살아나며 현재는 8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상황이 좀 나아졌지만 아직 플레이오프를 노리기에는 갈 길이 멀다. 전력의 격차가 6강권 팀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오리온은 KGC만 만나면 무적의 팀이 되곤 했다. 이번 시즌 4라운드까지 전승을 거뒀다. 점수차도 상당히 크게 났다. 지난해 10월 14일 시즌 첫 맞대결에서는 97대89로 이겼고, 11월 17일 2라운드 때는 93대85로 이겼다. 12월 23일 3라운드에서는 드디어 두 자릿수 점수 차(96대86)가 났다. 김 감독은 "부상이 있는 중심 선수들이 빠져있기도 했지만, 우리 선수들의 집중력도 오리온 전에 유독 떨어지곤 했다"면서 베스트 멤버를 가동해 이런 천적 관계를 끊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베스트 멤버를 가동한 4일 경기에서도 또 졌다. 새해 들어 첫 패배다. KGC가 각오를 다지고 나와서 인지 이 경기는 상당히 팽팽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오리온이 83대81, 1골 차이로 이겼다. 어떤 면에서는 두 자릿수 차 패배보다 더 분통 터지는 패배일 수 있다. 김 감독의 심기는 그래서 매우 불편하다.
비록 오리온이 플레이오프에서 KGC와 만날 확률이 크진 않지만 이런 식의 계속되는 특정팀 약세는 결국 좋지 못하다. 다른 팀들에게도 약점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KGC가 정규시즌 잔여 맞대결에서 '역 천적관계'를 깨트릴 지 주목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