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김병지 둘 다 필요없다.(웃음) 나는 우리 골키퍼들이 좋다."
10년만에 감격의 스즈키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박항서 베트남 A대표팀 감독이 "이운재, 김병지 중 하나를 베트남대표팀에 영입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레전드 수문장' 김병지의 1인방송 '꽁병지TV'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 선수들을 향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표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15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8 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대표팀에 1대0으로 승리했다. 결승1차전 원정 2대2 무승부에 이어 1-2차전 합산 스코어 3대2로 말레이시아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4만여 홈 팬들이 뜨겁게 환호했다. 베트남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당시 한국과 같은 축구열기에 휩싸인 가운데 2002년 4강 레전드들이 베트남 현지를 찾아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을 뜨겁게 응원했다.
스즈키컵 결승전을 앞둔 지난 13일 '2002 레전드' 김병지, 현영민과 김형범, 박명환 등 '꽁병지TV' 메인패널들이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오랜 기간 뜻을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눠온 스승 박항서 감독과 김병지의 약속이었다. 두 달전 김병지 SPOTV 해설위원을 만난 박 감독은 "12월15일에 하노이에 오면 될 것같다"고 했었다. 박 감독의 예감은 적중했고, 하노이의 약속은 지켜졌다. 김병지 위원과 후배들은 15일 말레이시아와의 결승 2차전 홈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를 찾았다. 경기를 하루 앞둔 14일 밤 호텔에서 박항서 감독은 김병지 등 한국에서 온 절친 후배들과 조우했다. 짧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승부의 긴장을 풀었다. '꽁병지TV' 깜짝 출연 약속도 지켰다.
지난 6월 러시아월드컵 때 첫 선을 보인 '꽁병지TV'의 약진은 눈부시다. 불과 6개월만에 구독자가 20만 명에 육박했다. 24시즌 706경기, K리그를 가장 오래 누빈 철인 골키퍼이자 번뜩이는 기획력과 마당발 섭외력을 두루 갖춘 김 위원이 발로 뛰며 만드는 콘텐츠는 축구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현역 선수 출신의 1인 방송 사상 유례없는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아시아 축구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 박항서 감독 섭외에 성공했다. 박 감독은 꽁병지TV와의 인터뷰에서 "김병지 이운재 중 둘 중 하나를 영입한다면?"이라는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첫째 둘다 필요없다. 우리 골키퍼들이 잘하고 있다"고 즉답했다. 이어 이운재, 김병지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둘째, 운재는 수원 시절 함께 있었고, 병지는 포항에서 함께했다. 둘 다 잘 안다. 장점 단점이 있다. 단점은 말할 필요가 없고, 병지는 순발력과 골키퍼로서 리딩이 뛰어나다. 운재는 안정감이 좋다. 둘다 스타일이 다르니까"라고 평가했다. 베트남 골키퍼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애들이 잘해주고 있다. 주전 골키퍼 당반람은 아버지가 베트남인, 어머니가 러시아인이다. 어릴 때 스파르타 모스코에서 훈련을 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발레를 했다"고 귀띔했다. 이영진 수석코치도 "동남아에서 골키퍼 포지션은 베트남이 최고 좋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박 감독은 언론에 보도된 보너스 25억, 집 3채 설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중국대회 다녀와서 내가 보너스를 25억원 받은 것처럼 나왔는데 그건 내 개인이 아니라 대표팀 전체에 나온 것이다. 집도 3채가 아니다. 살고 있는 집은 관사다. 하노이에 방 2개 짜리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있다. 다낭에 있는 집은 등기가 내 이름으로 돼 있지 않다. 집은 그쪽에서 관리하고 소유권도 거기서 갖고 있다. 양도를 할 수는 있다. 어찌 보면 1.5채다"라고 정정했다. 박 감독은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사실 이런 걸 일일히 해명할 일도 아니고…, 사실 과장되고 포장되는 게 많아. 대중들은 다 그럴 거라 생각할 것 아니냐. 언론 노출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절친 후배, 제자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비쳐진 그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소탈하고 겸손하고 유쾌했다. 박 감독은 "티켓 때문에 지금 난리인 것 알지?"라더니 한국에서 온 후배들을 위해 결승전 티켓 11장을 직접 구입해 선물로 내밀었다. 암표가격이 300달러까지 치솟았다던 귀한 티켓이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박 감독은 두산 투수 출신 레전드 박명환을 가리켰다. '화무십일홍', 60대 감독은 벼락처럼 찾아온 폭풍같은 인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저 야구선수(박명환)도 얼마나 유명했었나.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 지나가는 거야. 인기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 어느날 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기야.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한 거야. 내가 만약 30대였다면 이걸 유지해야겠다 욕심도 부렸겠지.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렇지가 않더라. 옛날 60대 같으면, 딴 세상 갔을 텐데…(웃음) 얼마 남지 않은 삶, 평범하게 열심히 살면 된다"라며 미소 지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