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은 '지배하는 축구'를 강조한다.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별하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몇년간 한국축구의 화두는 '점유율 축구'였다. 스페인과 바르셀로나 축구가 성공하며 대부분의 팀들이 '점유율 축구'를 화두로 삼았다. 정점은 역시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시절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점유율을 강조했다. 진 경기 조차 점유율 수치로 자위했을 정도다.
같은 '점유율 축구'라고 하나, 벤투호는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빌드업의 형태'다.
빌드업(build up)은 '점진적이고 체계적, 단계적으로 뭔가 만드는 행위'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축구에선 쉽게 '정확한 패스를 통해 공격 작업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한국식 점유율 축구는 볼을 뺏기지 않는데 초점을 맞췄다. 슈틸리케식 축구가 그랬다. 사실 빌드업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이었다. 뒤에서만 볼을 돌린다며 스페인의 패싱축구를 상징하는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와 합쳐 '후방 티키타카라'는 조롱 섞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벤투식 빌드업은 공식이 명확하다. 이른바 '후방 빌드업'으로 불리며, 뒤에서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 공격을 만든다.
사실 '후방 빌드업'은 벤투 감독만 쓰는 특별한 개념은 아니다. 현대축구, 특히 빅팀들이 대부분 쓰는 전술이다.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시티에서 자신만의 축구를 완성한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 분야의 대가다. 벤투호에서 유독 '후방 빌드업'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동안 공격 작업에서 배제됐던 골키퍼, 최후방 수비수들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벤투식 '후방 빌드업'이 불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방 빌드업'의 개념은 이렇다. 경기를 풀어나갔던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지며,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수비 진영에서의 공격 방향 설정이 중요해졌다. 전통적인 수비 능력 대신 기술과 패싱력이 좋은 수비수들이 각광받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현대축구에서 압박이 강조되며 공격수들까지 적극적으로 수비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압박을 푸는 것이 숙제가 됐다. 그 해법이 골키퍼의 활용이다.
예를 들어 센터백 두 명을 두 명의 공격수가 압박할 경우, 이를 벗어나는게 어렵다. 그런데 이 때 골키퍼가 가세를 하면 3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비어있는 쪽으로 패스를 하면 압박을 벗어나기 쉬워지고, 공격으로의 전환도 수월해진다. 그래서 최근 공격 전환 상황에서 수비수들은 골키퍼 앞이 아닌 옆쪽에 나란히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벤투 감독도 이같은 형태를 강조한다.
변화는 항상 어렵다. 한국축구는 분명 성장통을 겪고 있다. 칠레전(0대0)과 파나마전(2대2), 그리고 이번 호주전(1대1)까지 승리를 챙기지 못한 3경기에서 '후방 빌드업'에 대한 약점을 드러냈다. 경기 내내 불안한 모습이 이어졌다. 특히 발을 쓰는데 익숙치 않은 골키퍼들의 실수가 눈에 띄었다. 사실 후방 빌드업은 쉽지 않은 전술이다. 대단히 높은 수준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수비수, 골키퍼도 전세계적으로 귀하다. 몇일의 연습, 몇번의 연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투식 빌드업은 계속돼야 한다. 암흑기를 보낸 한국축구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김판곤 기술위원장은 '능동적인 축구'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지속적인 전진 패스, 상대보다 빠른 패스를 바탕으로 상대보다 미리, 더 많이 움직이는 축구'를 의미했다. 이를 위해 여러 감독들을 찾아나섰고, 우여곡절 속에 벤투 감독을 선임했다. '후방 빌드업'은 '능동적인 축구'를 한국에 심기 위한 벤투식 축구의 핵심이다. 벤투 감독은 "우리가 통제하고 지배하는 경기를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후방 빌드업"이라며 "앞으로도 후방 빌드업 스타일을 100%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축구는 당장 눈 앞의 아시안컵을 넘어 2022년 카타르월드컵,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후방 빌드업은 우리가 더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해 넘어서야 할 단계다. 전통적인 한국식 축구를 하기 위해 벤투 감독을 데려온 것이 아니지 않나.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