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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보다 1군 데뷔 빠른 이강인, 왜 그에게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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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부터 달랐다.

11년 전이었다. 당시 6세였던 이강인(17·발렌시아 B)은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며 '축구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2년 뒤 K리그 인천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공을 찬 그는 스페인 발렌시아 유스팀 알레빈 C에 입단했다. 역사의 시작이었다.

발렌시아도 이강인의 잠재력을 인정, 2013년 여름 6년 장기계약을 했다. 그 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공격수 로베르토 솔다도(현 페네르바체)는 이강인의 프리킥 골 장면을 극찬하며 자신의 SNS에 게재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고 이강인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2016년에는 발렌시아 유소년팀 '올해의 골' 주인공으로 꼽혔다. 같은 해에는 발렌시아 주 16세 이하 대표팀에 뽑혀 스페인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발렌시아 내에서 월반은 당연한 절차였다. 동급을 뛰어넘는 재능을 통해 1~2살 많은 선수들과 뛰면서 기량과 경험을 쌓았다. 이강인이 국내 팬들에게 제대로 알려진 건 지난해였다. 빅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맨시티, 아스널(이상 잉글랜드)이 이강인에게 강력한 러브콜을 보냈다. 놀라운 건 이강인의 뚝심이었다. 발렌시아 잔류를 택했다. 그러자 발렌시아는 이강인과의 계약조건을 조정하면서 바이아웃(최소 이적료)을 800만유로(약 103억원)로 책정했다. 이강인을 지키기 위한 특별조치였다. 이 계약서 안에는 이강인이 발렌시아 B(2군)으로 승격하면 2020년까지 계약이 자동적으로 연장된다는 조항이 삽입돼 있었다.

빅 클럽과 발렌시아는 과연 이강인의 어떤 모습에 매료된 것일까. 이강인을 한 마디로 규정하면 '조직력의 열쇠'라 할 수 있다.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던 이강인은 동료들을 활용하는 패스 플레이가 장점이다. 넓은 시야도 갖췄다. 이타적 플레이를 즐긴다. '축구지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상대 선수 2~3명을 가볍게 제칠 수 있는 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프리킥 능력도 탁월했다.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세트피스 상황이 발생하면 강력한 왼발 슛으로 골망을 자주 흔들었다. 지난해 이강인에게 접근했던 맨시티와 아스널 당시 스페인 일간지들은 '이강인은 발렌시아 유망주로 뛰어난 발 기술과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피지컬적 성장도 매력포인트였다. 스페인 언론은 '이강인은 3년 전 작은 소년이란 이미지를 지울만큼 피지컬적으로 성장했다. 발렌시아는 세계 최고의 재능을 손에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발렌시아도, 이강인 측도 속도를 더 낼 수 있었다. 이런 재능이라면 2군을 생략하고 1군으로 승격시켜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강인은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강인은 2군을 거치기로 했다. 2군에서 뛰기 위해선 프로계약이 필요하다. 발렌시아는 새 시즌을 앞두고 지난 7월 이강인과 4년 계약을 했다. 게다가 바이아웃은 무려 8000만유로(약 1034억원)를 책정했다. 만 17세 선수에게 1000억원이 넘는 바이아웃을 설정했다는 건 그만큼 구단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프로선수가 된 이강인에게도 올 시즌은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이다. 좋은 선물도 받았다. 프리시즌을 1군에서 보냈다. 공식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1군 정식 데뷔라고 보긴 어려웠다. 그러나 그 꿈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3개월여 만에 현실이 됐다. 이강인은 지난 31일 스페인 사라고사의 에스타니오 데 라 로마레다에서 열린 에브로와의 스페인 국왕컵(코파 델 레이) 32강 1차전에 선발 출전, 83분을 뛰며 팀의 2대1 역전승을 견인했다.

두 가지 기록을 깼다. 이강인은 만 17세 253일의 나이에 1군 무대를 밟아 남태희(27·알두하일)의 최연소 유럽 축구 데뷔 기록을 깼다. 남태희는 2009년 8월, 18세 36일의 나이로 프랑스 발랑시엔 1군 경기에 데뷔한 바 있다.

특히 아시아선수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발렌시아에서 1군 경기를 치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발렌시아 외국인 최연소 데뷔였다. 그 동안 프랑스 출신 모모 시소코(18세 220일)가 발렌시아의 외국인 최연소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이강인이 1년 가까이 앞당겼다.

'대한민국 에이스' 손흥민(26·토트넘)의 독일 함부르크 1군 데뷔 시점보다 빠르다. 손흥민은 2010년 10월 28일 프랑크푸르트와의 DFB포칼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손흥민은 만 18세 112일이었다.

발렌시아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강인이 발렌시아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며 이강인의 1군 정식 데뷔를 축하했다.

'작은 거인'의 쇼가 막을 올렸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