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해커로 정했습니다."
넥센 히어로즈가 예상대로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 4차전에서 불펜 총동원령을 내렸다. 선발 보직을 맡은 외국인 투수도 예외일 수 없었다. 넥센 장정석 감독은 31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4차전을 앞두고 "오늘 출장 제외 투수는 제이크 브리검과 한현희 뿐이다. 에릭 해커는 조커로 불펜에 대기한다"고 선언했다.
넥센은 전날 열린 3차전에서 3대2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2패 뒤 1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 탈락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리한 입장이다. 4차전에 지면 그대로 끝이다. 여기서 이겨야 5차전을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3차전 승리 뒤 이미 4차전 총력전이 예상됐다. 장 감독 역시 승장 인터뷰 때 "내일은 외국인 투수도 (불펜에) 대기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브리검과 해커 중에서 굳이 해커를 '조커'로 대기시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사실 해커는 불펜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올 시즌 최종전이던 지난 13일 대구 삼성전 때 딱 한 번 불펜 투수로 나온 적이 있는데 매우 부진했다. 당시 선발 안우진이 초반에 흔들리자 2회말에 두 번째 투수로 나왔지만, 3안타(1홈런) 1볼넷 1탈삼진 4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또한 이전 소속팀 NC 다이노스에 있을 때도 불펜투수로 나올 때는 약했다. 정규시즌 때는 2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했는데, 선발일 때의 평균자책점(3.52)에 비해 기록이 안 좋다. 특히 NC 시절 포스트시즌 불펜 투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당시 NC 사령탑이던 김경문 감독과도 트러블을 빚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감독은 브리검과 해커 중에 고민하다 해커에게 조커의 중책을 맡기게 됐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브리검이 던진 회수나 날짜 등을 생각할 때 휴식이 충분치 않아 해커로 정했다. 또한 5차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브리검에게 휴식을 줬다"면서 "해커가 불펜에서 좋지 못한 점도 알고 있다. 삼성전 때 실점이 많았고,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하지만 해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조커'다. 우리 승리조 불펜의 흐름이 좋아 일단 그 선수들에게 경기를 맡기고 그 다음 변수가 안되면 해커가 등장할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결국 해커는 불펜에서 우선 등판 대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사정이 매우 불리해질 때 쓰는 '조커'다. 전략상의 플러스 요인이라기 보다는 그만큼 팀 전체가 총력전에 임하고 있다는 의미의 기용법으로 해석하는 게 적합할 듯 하다.
또한 내심 '5차전'을 향한 큰 그림을 그리는 장 감독의 의도도 읽힌다. 브리검을 4차전에 투입하면 5차전 선발로 낼 투수가 없어진다. 5차전까지 가면 27일 1차전에 나온 브리검은 5일을 충분히 쉬고 정상 루틴으로 등판할 수 있다. 장 감독은 여기까지 보고 있다.
고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