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넥센 히어로즈 장정석 감독은 1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앞두고 '가을 야구' 무대를 처음 밟는 이정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큰 경기 경험이 없는 이정후가 부담을 가질 수 있으니 "응원을 해주지 않았느냐"에 대한 답이었다.
장 감독은 "난 잠도 잘 잤고, 시즌 막판 마음이 편했는지 체중도 1~2㎏이 늘었다"면서 "선수들도 평소처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따로 불러 얘기를 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정후는 지난해 신인왕이다. 그러나 넥센은 지난 시즌 페넌트레이스 7위에 그쳐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올 정규시즌서 초반 부상에도 불구, 타율 3할5푼5리로 맹활약한 이정후는 이번 포스트시즌이 데뷔 첫 가을 야구다. 장 감독이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평소처럼 대했다고는 하나, 본인이 가질 수 있는 혹시 모를 부담감은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낯선 무대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날 KIA 선발은 좌완 에이스 양현종. 1번 좌익수로 선발출전한 이정후는 1회말 첫 타석에서 양현종의 초구 141㎞ 직구를 잘 받아쳤지만,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3회 두번째 타석에서도 4구째 144㎞ 직구를 힘껏 잡아당겼지만, KIA 1루수 김주찬의 호수비에 걸려 아웃됐다. 배트 중심에 맞아 나가는 게 컨디션이 나쁘진 않아 보였다.
이정후가 낯선 가을 야구에서 낯선 경험을 한 건 5회말 타석이다. 넥센은 0-2로 뒤진 5회말 선두 임병욱이 좌전안타로 출루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이어 김혜성이 KIA 포수 김민식의 타격 방해로 살아나갔고 김재현이 유격수 왼쪽 내야안타를 쳐 만루의 기회를 만들었다.
세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정후는 양현종의 3구째를 건드려 내야로 높이 솟구치는 플라이를 쳤다. 우효동 주심이 인필드플라이를 선언했으나, 공은 KIA 김민식과 3루수 이범호 사이에 떨어진 뒤 파울 지역으로 나가 '파울'이 선언됐다. 이때 이정후의 행동이 묘했다. 타구의 결과를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인필드플라이'이니 '당연 아웃'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다. 만일 타구가 내야에 그대로 머물렀다 해도 타자는 아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파울이었다.
이정후가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고 타석으로 돌아가는 순간, 다음 타자 서건창은 이정후를 불러 귀에 대고 몇 마디를 던졌다. 아마도 경기와 플레이에 대한 '집중'을 조언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정후는 4구째 143㎞ 직구를 밀어쳐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날리며 3루주자를 불러들였다. 이정후의 타점으로 1점을 만회한 넥센은 여세를 몰아 4점을 추가해 5-2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정후의 진가는 수비에서도 발휘됐다. 5-5 동점인 7회초 무사 1루서 최형우의 좌중간 2루타성 플라이를 슬라이딩 캐치로 처리한 뒤 1루주자까지 잡은 것이다. KIA측의 비디오 판독 요청이 있었지만, 공은 정확히 이정후의 글러브에 안겼다. 이어진 7회말 네번째 타석에서는 KIA 팻딘의 138㎞ 높은 공을 잡아당겨 우전안타를 치며 가을 야구 첫 히트도 기록한 뒤 서건창의 2루타때 쏜살같이 달려 결승 득점도 올렸다.
4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 그리고 '1호수비.' 그는 낯선 가을에도 강했다. 고척=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