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했던 연승의 기억에 마음이 풀린 걸까, 아니면 긴 휴식기 동안 몸이 풀어진 걸까.
시즌 막판 넥센 히어로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 3위까지도 위협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4위 수성을 위협받고 있다. 아시안게임 휴식기를 마친 뒤 재개된 후반기 레이스에서 1승 뒤 뜻밖의 4연패를 당하면서 벌어진 상황. '설마설마'하다가 코너에 몰린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상승 흐름을 이어가다가 휴식기를 보낸 뒤 맥없이 연패에 빠지는 모습, 이미 목격한 바 있다. 전반기를 5할 승률의 5위로 마감하고 야심차게 홈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에서 출발한 후반기 레이스 초반에 이런 식으로 허무한 연패에 빠진 적이 있다.
4일간의 올스타 휴식기가 끝난 뒤다. 7월 17일부터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 3연전에서 스윕패를 당하더니 20일 NC 다이노스와의 창원 원정 첫 판까지 내주며 4연패에 빠졌다. 무난히 유지하는 듯 했던 5위 자리가 위협받게 된 원인이다. 이후 넥센은 4경기에서 3승1패로 살아나는 듯 하더니 다시 7월 26일 고척 KT전을 시작으로 바로 이어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3연전을 또 스윕 당하며 4연패를 한번 더 경험했다. 결국 이로 인해 6위까지 추락했던 악몽이 있다.
그런데 이런 '휴식기 이후 연패' 패턴이 또 나타났다. 이번엔 휴식기가 확실히 좀 길었다. 아시안게임 브레이크로 리그가 18일이나 중단된 후 9월 4일부터 재개된 후반기 레이스. 넥센은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첫 판을 깔끔하게 7대3으로 따냈다. 무엇보다 휴식기를 통해 부상에서 돌아온 마무리 김상수의 존재감이 큰 힘이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이후 허무하게 4연패를 당했다. 냉정히 말해 힘이 부족해서 이뤄진 4연패가 아니다. 4패 중 3패가 역전패였고, 특히 이 중에서 두 번(5일 SK전, 6일 KIA전)은 각각 9회말과 8회말을 막지 못해 역전패했다. 데미지가 오래 남는 가장 안 좋은 형태의 패배라 할 수 있다. 이렇듯 휴식기 후 허무한 연패 패턴이 반복되는 현상은 단순히 볼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빈틈이 너무 많이 노출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넥센이 10일 KT전에서 6대4로 이기며 연패가 더 길어지기 전에 탈출에 성공했다는 것. 만약 이 경기마저 내줬다면 5위 LG 트윈스에 불과 0.5경기차로 쫓길 수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는 승리다. 넥센으로서는 시즌 막바지에 정말 아찔한 경험을 한 것이다.
넥센은 지난해 7위로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시즌 130경기째까지 5위를 하다가 막판 14경기에서 3승11패로 고꾸라진 아픈 기억이 있다. 그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최근 4연패가 남긴 교훈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모두 여전히 4강을 안심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경기 종료 순간까지 승리를 속단해선 안된다는 점을 확실히 재인식 할 필요가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